가치 있는 삶


한 권으로 만나는 소로의 정수《소로의 문장들》 







삶의 기술


2. 나는 태어나던 날만큼 현명하지 못했음을 언제나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월든』


3. 사람은 자신의 희망도 절망도 아니며, 자신의 지난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우린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더더구나 알지 못한다.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그러면 그날 한  일의 어떤 부분이 한낮에 생각했던 것보다 밝게 빛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지나온 길 중에서 어디가 가장 빛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6.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는 어떤 관찰 방법이나 훈련보다 중요하다. 언제나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잘 선택된 역사나 철학이나 시의 강의, 또는 훌륭한 교재나 감탄스러운 일상이라 할지라도 이것들은 별로 대단한 게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제대로 보는 사람a seer'이 되겠는가? 당신의 운명을 읽고 당신 앞에 놓인 것을 보라. 그런 다음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어라. 『월든』


18. 한 방울의 포도주가 술잔 전체를 물들이는 것처럼 아주 작은 진실 한 조각이 우리 생애 전부를 물들일 수도 있다. 진실은 고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며, 보물처럼 우리 마음 속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 아니다. 실질적인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고 새롭게 배워나갈 때다.

100개의 돌을 하나씩 집어 자신의 바구니로 가져오는 사람처럼 해마다 진실의 단편을 하나씩 선택해 나란히 쌓아두는 것이다. 『1837. 12. 31. 일기』


25. 오랜 지혜든 오늘날의 지혜든 세상에 이미 알려진 것은 내 곁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는 빤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1838. 8. 4. 일기』


31. 우리가 칭송하는 다른 사람의 미덕은 우리 자신의 미덕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 지닌 것만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39. 6. 22. 일기』








35. 삶은 안락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매일, 매주 단조롭고 평온한 날들의 반복에 만족하지 말고, 전투를 앞둔 군인처럼 내일의 치열한 출격을 열렬히 고대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용맹한 병사에게는 평화로운 무위와 여자가 전쟁의 피로보다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육체적 만남을 구하는 우리의 몸이 온화한 날씨나 열대 기후에서 나른함을 느끼듯, 우리의 영혼도 불안과 불만족 가운데서 더 무성하게 자라난다.

자기 영혼의 땅을 갈 시간을 갖는 이가 진정한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1840. 2. 11. 일기』


42. 누군가가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선물을 하면 우린 그 사람이 아니라 그의 진실과 사랑에 빚을 지게 된다. 그 빛을 갚기 위해 우린 더욱 진실하고 친절해져야 한다. 스스로 친절을 베풀면서 기뻐하는 만큼 우리가 진 빚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란 곧 스스로 만족하면서 기뻐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고귀한 빈자는 고귀하게 친절을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의무에서 벗어난다. 『1840. 5. 14. 일기』


45. 나는 하늘의 밑바닥을 볼 수 없다. 나 자신의 밑바닥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내가 지닌 무한함의 상징이다. 『1940. 6. 23. 일기』


49. 우리는 자신의 삶을 신봉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철저하고 진실하게 살도록 강제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의 중심으로부터 반지름이 다양한 원들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적은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월든』


50. 뉴잉글랜드에 매년 우리를 찾아오는 비둘기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숲에 새들이 둥지를 틀 나무기둥이 없어서다. 마찬가지로 매년 우리를 찾아오는 생각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 마음의 숲이 나날이 황폐해져―불필요한 야심의 불을 지필 불쏘시개로 팔려 나가거나 제재소로 보내지는 바람에―, 생각이 내려 앉을 나뭇가지 하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은 더이상 우리 안에 집을 짓지도 번식하지도 않는다. 좀더 따뜻한 계절에는 생각의 희미한 그림자가 마음속 풍경을 언뜻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봄이나 가을의 철새처럼 날갯짓을 하는 생각이 드리우는 그림자다. 그러나 아무리 하늘을 올려다봐도 그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 길이 없다. 우리의 날개 달린 생각은 우리 안에서 가금류로 퇴화해버린다. 생각은 더 이상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으며, 기껏해야 상하이나 코친차이나(과거에 프랑스령이었던 베트남 최남단 지역)의 영광을 누릴 뿐이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위.대.한 생각이나 위.대.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땅에 딱 붙어 사느라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이제 스스로를 좀더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 적어도 나무 위까지는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걷기』


53. 우린 강해지고 아름다워져 영혼의 동반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 몸을 부지런히 만들어가야 한다. 나무처럼 자라나고 자연이 순리에 따르는 건전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몸을 가다듬어야 한다. 내 영혼을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 병들고 나태한 육신이 아닌 들판을 뒤노는 영양에게 즉시 줘버렸을 것이다. 『1841. 1. 25. 일기』


64. 내 삶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살피게 하지 않으면 삶이 점점 꾀죄죄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삶의 때가 덕지덕지 쌓인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우리의 날들을 냉철하고 차분하게 살피는 것이다. 『1841. 3. 30. 일기』


68. 인간의 진짜 성격은 그의 모든 말과 행동 아래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다. 화강암이 다른 지층의 기저를 이루는 것처럼. 『1841. 5. 3. 일기』


71. 가장 좋은 생각에는 어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덕도 없다. 우주는 최고의 생각으로 향하는 새햐얀 빛으로 넘실댄다. 자연의 도덕적 측면이란 것은 인간의 생각이 반영된 편견에 불과하다. 어린아이에게는 지품천사도 수호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린 미덕을 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연한 채 변함없는 아침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속에서 옭고 그름이라는 딜레마에 빠질 필요 없이, 올바르게 살아가면서 주변 공기를 호흡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생명력 그 자체라는 말 말고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침묵은 이에 관한 설교자이며,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 있을 터다. 그런 삶을 아는 이는 설교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841. 8.1. 일기』



한 권으로 만나는 소로의 정수《소로의 문장들》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