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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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여행

  이른 아침의 산책은 그날 하루를 위한 축복이다. 나는 안개비가 내릴 때 일어난 내 이웃들에게 마치 어떤 전승신화를 들려주듯 맑은 일출과 새들의 노랫소리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오래된 새벽처럼 싱그럽지만 이제는 아득히 멀어진 시간을 되돌아본다. 그때는 탄탄하게 피어난 건강함이 가득했고, 모든 행위가 단순하고 용맹했다. 『1840. 4. 20. 일기』


  우리를 건강하고 평온하며 만족스럽게 해줄 묘약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증조부나 당신의 증조부가 빛은 환약이 아니라, 우리의 증조모인 자연의 여신이 빛은 우주적이고 식물적이며 식물학적인 약이다. 이 약으로 자연의 여신은 언제나 젊음을 유지해왔으며, 그녀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수많은 '올드 파(152세까지 살았다고 알려진 영국인 토머스 파(1486~1635)를 가리킨다. '올드 톰 파'라고도 불린다'보다 오래 살았고, 그들의 썩은 지방으로 자신의 건강에 양분을 공급해왔다.

  내가 원하는 만병통치약은 무엇으로도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종종 볼 수 있는, 약병들을 싣고 다니는 길고 납작한 검은 배 모양의 수레에서 나오는 돌팔이 의사들의 몰약 병, 저승의 강 아케론과 사해에 담가 만든 혼합물 같은 약이 아니다.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아침 공기를 마시려 들지 않는다면,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 공기를 담은 병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도록 하자.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보관해두더라도 아침 공기는 정오가 되기도 전에 병마개를 밀고 나와 새벽의 여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버린다는 것을. 『월든』


  나는 하루에 적어도 네 시간은―대개는 그보다 더 오래―세속적인 모든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숲속과 언덕을 느긋하게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과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당신은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때로 기계공이나 가게 주인 중 많은 이들이 오전뿐만 아니라 오후까지 내내 다리를 꼰 채 마치 다리의 용도가 서거나 걷기 위한 게 아니라 앉는 것이라도 되는 듯 가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오래전에 자살하지 않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


  각자의 가슴속에는 지하의 불을 모시는 신전이 있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 황량한 언덕 위에서도 여행자는 외투 안자락에 어떤 난롯불보다 따뜻한 불을 소중히 품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계절의 보완물과도 같아서 한겨울에도 마음속은 여름이다. 그곳은 언제나 남쪽 나라다. 거기로 온갖 새와 곤충이 몰려들고, 그의 가슴속의 따뜻한 샘물 주위로 개똥지빠귀와 종달새가 모여든다. 『겨울 산책』


  걷기로 말하자면, 영국의 대도시 주민들은 대부분 공원과 대로를 걷는 데 국한돼 있다. 윌킨슨에 의하면, 인근의 얼마 안 되는 오솔길들이 "토지 소유주들의 침해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오솔길을 걸을 권리가 옹호되고 지켜져야 하며, 공공비용으로 오솔길을 통행 가능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제창했다. 그리고 "단단한 기초 위에 아스팔트를 깐다면 어렵지 않게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영국 대도시 인근에서의 걷기와 걷기의 전망이란게 어떤 것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천재일 수도 있는 어떤 사람이 돌아다닐 수 있는 세상이 대로와 공원에 제한된다고 생각해보라! 나 같으면 그렇게 갖혀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신경증으로 죽고 말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살아아 햔다는 걸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난 아마 태어나기를 주저했을 것이다.『1851. 9. 3.일기』



  우리가 밖에서 하게 되는 발견들은 특별하고 개별적인 것들이다. 반면 집에서 하는 발견들은 보편적이고 중요한 것들이다. 우리는 더 멀리 갈수록 표면에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집에 가까울수록 더 깊어진다.『1851. 9. 7.일기』



  이제야 달이 보름달이 되었고, 나는 홀로 걷는다. 낮에는 늘 그렇지는 않더라도 밤에는 혼자 걷는 게 제일 좋다. 나와 함께 걷는 사람은 지금의 내 기분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대화는 우리가 걷는 길로 한정되어야 하며, 우리 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사건 그리고 지세에 따라 달라져야 할 터다. 부자연스럽게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산책에 방해가 되는 이들에게는 작별을 고하는 게 좋다. 나는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딱 한 명 밖에 알지 못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걷고 이야기하듯 술집에 함께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생각 속에서는 결코 나란히 앉아 있지 못하며, 서로의 침묵을 들을 수도 없다. 사실 우린 결코 침묵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침묵을 깨려고 할 뿐 아무것도 바로잡지 못한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1851. 7. 12.일기』



  내가 말하는 걷기는 환자가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듯 하는 운동, 즉 아령이나 의자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걷기는 그 자체로 그날 하루의 과업이자 모험이다. 

  운동을 하고 싶거든 생명의 샘을 찾아 나서라. 건강을 위한다면서 먼 초원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샘을 찾을 생각은 않고 아령이나 흔들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게다가 우린 낙타처럼 걸어야 한다. 낙타는 걸으면서 되새김질 하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한 여행자가 워즈워스의 하녀에게 주인의 서재를 보여달라고 청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그분의 도서관이고요. 그분의 서재는 문밖 자연이랍니다."『걷기』








  내 집 부근에는 훌륭한 산책로가 많다. 수년간 거의 매일 걸었고 때로는 며칠씩 내리 걷기도 했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길도 있다. 전혀 새로운 경치는 내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며, 난 아직도 오후 산책 길에서 언제라도 이런 행복과 마주할 수 있다. 두세 시간만 걸으면 내가 간절히 보고 싶어했던 낯선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때로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농가 한 채가 다호메이 왕국(1600년경부터 1904년 사이 오늘날의 배냉 지역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왕국)만큼이나 근사해 보인다. 이렇게 걷다보면 10마일(약 16km) 반경이나 오후 산책길에서 만나는 풍광의 변화무쌍함과 사람의 70 평생 사이에는 서로 닮은 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무리 자주 겪어도 결코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는 게 그것이다.『걷기』 



  소중한 젊은 날들이여! 그 시간은 결코 다시 올 수 없는 걸까? 그 시절에는 산책하는 동안 지나친 호기심으로 세세한 것들을 관찰하지 않았다. 오직 나 자신만을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꼈다. 나의 성장하는 육체와 지성과 마음 안에 자연을 품고 있었다. 어떤 벌레나 고충도, 어떤 네발짐승이나 새도 나의 시야를 제한하지는 못했다. 나의 눈은 끝 모르는 우주로 열려 있었다. 이제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는 내 눈 속에 한 점 티끌이 되었다.『1853. 3. 30.일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문화와는 대조되는 절대적인 자유와 야성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인간을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자연의 거주자나 자연과 땅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고자 한다.『걷기』 



  이 타락한 시대에 강물의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결코 절망하지 않으리『콩고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별들이 밤낮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듯 인간의 허영심이 들끓는 속된 대낮에도 선한 요정들은 여전히 위를 굽어보며 인도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1838. 8. 29. 일기』 



  자연을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연의 시스템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순환한다. 싹은 마치 짧은 봄날이 영원하기라도 한 듯 서두르거나 갈팡질팡하지 않고 서서히 자라난다. 자연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각각에 필요한 시간만큼 지극한 공을 들인다. 마치 그 일이 다른 모든 것들을 지체시키는 유일한 목적이라도 되는 양, 혹 지는 해가 아직 남아 있는 날을 활용하라고 재촉하는 듯 보여도, 오랫동안 변함없이 고르게 내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자신의 시간을 영원처럼 여길 것을 가르치며 우리를 안심시켜주곤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안절부절못하거나 조바심치는 법이 없다. 그는 어떤 산책자들이 매 걸음마다 온몸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매 순간 사진이 있는 그곳에서 머문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피로가 쌓여 갑자기 멈춰 서게 되기 전까지는 다리 근육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1839. 9. 17. 일기』 



  어디를 헤매든 우주는 우리를 에워싸기에 우린 언제나 우주의 중심이 된다. 이런 이유로 어디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하늘은 언제나 오목하다. 끝없는 심연을 내려다보아도 심연 또한 오목할 터다. 들판에 서서 보면 하늘은 지평선에서 땅 쪽으로 둥글게 굽어 있다. 나는 하늘의 치마를 끌어내린다. 별들이 아주 낮게 떠 있는 걸 보면 내게서 멀어지고 싶지 않은 듯하다. 별들은 언제나 나를 기억하면서 빙빙 돌아 내게로 되돌아온다.『1841. 8. 24. 일기』



  숲 저편 보이지 않는 농가에서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것을 볼 때면 가까이 가서 살필 때보다 농촌의 가정생활에 대한 시적 암시를 더 많이 받게 된다. 솔잎과 떡갈나무에 맺힌 이슬이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듯 연기도 조용히 하늘 나라로 올라간다. 그러는 동안 원과 화관 모양을 만드느라 저 아래 가정의 여느 주부 못지않게 분주하다. 연기는 한 편의 인간 전기와 같은 시대에 속하며, 누군가의 모자 깃털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저 한 뙈기의 하늘 나라에서 어떤 구상이 무르익고 어떤 재주가 발휘되는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진다. 연기에서는 냄비가 끓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이 새어 나온다. 연기는 사람의 숨결과도 같다. 역사나 소설의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저 구름 아래에서 일어난다. 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의 모든 이야기가 그 아래에서 펼쳐진다.『1841. 12. 15.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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