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105일차, 구본형의 《나에게서 구하라》 전 포스팅에 이어서,,,



포스팅 보기 ☞ 욕망을 알아차린 후 꿈과 연결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나 왜 태어난거지?"







《나에게서 구하라_구본형》 

욕망만큼 강력한 자기격려는 없다


지금이 좋지 않다는 인식은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자신에게 설득시키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낸다. 어려워야 비로소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절실함이 바로 '지금'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절실함'이 없으면 변화는 늘 '내일의 일'에 불과하다. 나는 절실하지 않은 변화가 성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허위고 왜곡이고 기만이고 투정에 불과하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절실함'이라는 변화의 원동력은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힘'이라는 것이다 방향을 가질 때 힘은 비로소 유용한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힘에 방향성을 실어 주는 것이 바루 '꿈'이다. 나는 불만이 많은 사람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갈 곳이 분명한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역시 갈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한다. '갈 곳'이 바로 꿈이다. 이룰 꿈이 없는데 어떻게 꿈이 이루어지는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갈 곳'을 알려 줄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갈 곳을 찾아내는 것은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꿈을 꾸어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내지 못하면 하고 싶은 욕망을 이룰 수 없다. 욕망은 오직 꿈과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다. 하루에 자신마을 위해 적어도 두 시간을 써라. 그렇지 않고는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베끼고 모방해야 한다. 대가들을 통째로 삼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토해 내야 한다. 개인적 체험과 깨달음을 자신의 체액 속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없다면 당신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 바로 죽었다는 뜻이다. 만들어주는 대로 살지 마라. 삶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상실자들은 과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커다란 꿈을 가진다. 그들은 이룰 수 있는 현실로서의 꿈을 믿으며 그 꿈에 보다 충실하다. 삶을 다시 한 번 아름답고 멋진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미래를 현실로 인식한다.


  우리에게 꿈은 무엇인가? 자유다.


  자신을 주도적 인물로 정립하기 위한 정신작용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대와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축소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대로 삶을 버리고 세상 속에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신의 제국 하나를 만들어내겠다는 자기선언인 것이다. 모든 평범한 자는 우연한 사건을 만나 영혼을 흔드는 각성을 거쳐 사회가 강요한 꿈이 아닌 자신의 꿈을 꾸게 되는 위대한 모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꿈길, 우리의 몯느 걸출한 모험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시작된다. 꿈은 과거에 대한 미래의 승리인 것이다.


  그렇지만 맘껏 상상력을 풀어놓아 생겨난 비현실성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걱정하지 마라. 꿈에는 현실이 없다. 꿈을 꿀 때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꿔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그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그래서 꿈은 우리가 계획한 것 중에서 가장 담대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류의 진보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그 대담한 꿈을 꾼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길들여진 두뇌'의 패러다임은 넘어설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현실서으이 문제를 따질 때는 꿈이 그 실천에 이르렀을 때다. 이때는 하나의 해결책밖에 없다. '내일 죽을 것처럼 행하는 것', 이것이 묘책이다.








명상 105일차, 구본형의 《나에게서 구하라》 전 포스팅에 이어서,,,



  나는 젊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라고 생각하네. 지나고 보니 인생을 결구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로 짜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져 기쁘기도 하고, 오래 준비하고 바라던 일이 무산되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삶에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지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건들이 곧 인생의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네.

누군가의 삶이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려면 그 사건들이 흥미진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커다란 사거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든 그것을 훌륭하게 재해석해낼 수 있는 힘에 달려 있네.

  젊은은 젊음으로 인생에 기여한다네. 너무도 쉽게 늙지 말게. 위대한 것이 그대의 가슴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주와 공명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그 일'을 반드시 해내게.



  젊은이들은 모두 학료를 졸업하면 회사로 몰려간다. 회사는 밥이고, 일상이고, 땀이고, 속박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지치고, 반복하고, 눈치 보고, 할 말을 참는다. 현실은 우리가 리얼리스트가 되도록 한다. 좋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땅에 뿌리내린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꿈을 꾸자. 하늘로부터 받은 모든 영감을 동원하고 지혜를 빌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기도企圖 해보자.


  그 일이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도록 특별한 생각을 내 현실 속에 구현해보자. 이때 우리의 현실은 살 만한 것이 되고, 우리의 생각은 새로운 현실이 된다. 이쯤 되면 나는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사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 내 생각 하나가 숨 쉬고 자라나게 하는 작은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내 마음대로 작동하는 우주 하나가 생겨나는 것이다.


  너의 두려움, 그 두려움 앞에 움츠러드는 열정, 그리고 막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불안은 오히려 본질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나팔수들이다. 바로 너의 정신적 각성이 인생의 변곡저모가 도약점에 서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네 밀래로 가득 채우길 바란다. 꿈은 미래를 지향하고, 마음은 현재의 살아있음을 감지할 때, 삶은 올바른 방향으로 지금을 음미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나는 이 잔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물을 채우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무언인가'가 그 잔을 채우는 것을 방관한다.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아닌 것처럼.

  나는 우리가 스스로의 손으로

  이 잔의 나머지 반을 채워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인생에 대한 즐거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꿈은 공상 속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꿈은 처음에 화분 한 개로 시작한다. 가장 자기다운 작은 관심의 실천으로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하나의 씨앗이다. 가장 자기다운 DNA를 가진 원초적 배아다. 씨를 하나 땅에 심을 때, 우리의 꿈은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이 바로 자기였음을 알게 된다.


  갈 곳을 만들고 준비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것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것은 가장 나다운 길이어야 한다. 먹고 살고 또한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현실을 자세히 보라. 디테일이라고 하는 촘촘한 그물망 속에 내가 보인다.

  내가 아닌 것들과 나인 것을 구별하라.

  나인 것이면서 세상이 요구하고 있는 기대된 나를 연결하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재창조하라. 내가 만들어낸 최고의 나를 꿈꾸라.

  지금의 나와 유토피아 속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를 만들어라.

  시간을 내어 매일 이 다리를 건너라.

  유토피아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이정표를 확인하라.


  매일 아침 나는 스스로 훈련한다. 아침에 일어나 불가능한 일 하나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제 꾸었던 꿈의 연장일 때도 있고, 불현듯 떠오른 다른 꿈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현실이 아닌 비현실 하나를 믿는 훈련을 해본다. 내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세상 하나를 창조해보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 나느 훨씬 괜찮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이상하지만 이런 정신적 근육의 훈련이 나를 젊게 만든다. 젊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아도 열린 마음을 가진 젊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내가 20년간 잘 다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나 역시 불안했다. 그러나 나는 나오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내가 결정하지 못한 것은 나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나올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삼 년 동안 준비했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나는 내가 갈 길을 준비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그 준비 결과를 시험했다. 나는 매년 책을 한 권씩 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일 년에 하루 두 시간씩 700시간을 투자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작은 승리가 나를 스스로 믿게 했다. 내가 나를 믿게 되자 아내 역시 나를 믿게 되었다.



명상 105일차, 구본형의 《나에게서 구하라》 전 포스팅에 이어서,,,




<명상 105일차>



강력한 믿음은 자기최면 효과가 있다. 이 효과는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아주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또한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용기를 북돋는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꿈과 욕망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지금 말하고 있는 믿음은 꿈과 직결된 단 하나의 욕망으로서, 이것을 해야만 살수 있고, 매순간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이 빠진 인생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말그대로 인생의 궁극의 목적에 근거한 '참 된 믿음'을 말한다.


나는 어제 2시 30분에 일어난데 이어, 오늘은 3시에 일어났다. 알람을 맞춰놓지도 않았고, 주말(휴일)이라 얼마든지 늦잠을 잘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고, 그냥 일어나 버렸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다.

물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을 청하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잠이 부족한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과 평소에 피곤함을 다소 느낀다는 것 따위가 꿈을 향한 나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다. 

많이 피곤하면 새벽잠을 한 시간 더 늘릴 것이요. 피곤함이 없으면 새벽잠을 한 시간 줄일 것이다. 또한, 한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할 상황이라면 잠을 한 시간 줄일 것이다.


《나에게서 구하라》의 구본형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9년 전작 《사람에게서 구하라》를 통해서다. 처음 읽고 난 이후에도 다시 몇 번 꺼내 읽을 정도로 내용이 좋았고, 구본형 작가의 글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다 약 한 달 전 《나에게서 구하라》를 구입하였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소감은? "역시 좋다"이다. 다시한번 '코드가 잘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의 마지막 단락에, 3년 동안 4시에 일어나서 2시간 동안 글을 썼다는 내용이 있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나는 내가 갈 길을 준비했다"고 말하였는데,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와 나의 기상시간이 똑같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이건 '우연이 아닌 우연이구나!'(어떤면에서는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장인이 출근전에 두 시간을 확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시간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지만, 두 시간이라면 최소한 다섯 시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실상 다섯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의미있는 일을 하고 출근한다는 것은 내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정이다. 


개인의 욕망과 꿈을 이루기 위해 이토록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가 회사일이라고 등한시 하겠는가! 이런 부류의 사람은 출근 시간도 남들보다 빠를 것이라고 본다. 즉 출근을 일찍 하는 사람이 출근 전 두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다섯 시에 기상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네 시 언저리(늦어도 네 시 반)에는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욕망과 꿈에 다가서기 위해 매일 두 시간 이상씩 노력하라는 저자의 목소리와 기상 시간,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나의 생각과 기상 시간의 일치는 이 책《나에게서 구하라》를 통해서 저자와 내가 만날 수밖에 없었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욕망과 꿈, 그리고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고 갖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주위에 피해를 끼치고 자신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따라서 철저히 검증하고 숙고해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을 명상과 '참 나'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꿈을 향한 내 발걸음은 더욱 확고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소 조심스러운 면모가 있었으나, 이제는 알 것 같다. 거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몸으로 태어났고, 배고프다 목청껏 울어댔고, 똥쌌다고 안타깝게 울었다. 그래도 창피한 줄 몰랐다. 이것은 나의 정당한 의사표현이었을 뿐이다. 조금 더 커서도 고추를 내놓고 다녔고, 늦게까지 어머니 젖꼭지를 만졌어도 창피하지 않았었다. 이게 맞다. 애초부터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태어났다. 더 나이 들어 세상의 관념에 길들여지기까지 나의 완벽한 세상에서 풍요롭고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았었다. 


좌우명의 변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 하면 된다.'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좀 더 그럴싸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바꾼지 얼마되지 않아 '내 할 도리를 다한 후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이 왠지 비겁하면서도 나 답지 않다고 느꼈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우연이 '죽음'에 관한 책을 접하면서 지금의 "'후회없는 삶을 살자.' 죽음 직전 '이 정도면 후회없이 잘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자.'"로 바뀌면서, '지금 이 순간'과 '인생의 가장 마지막 시간'을 늘 염두에 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바르고 옳은 인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 각자에게 맞는 인생이 따로 있을테니까! 

자기 인생을 산다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건 · 사고를 대함에 있어 이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행복으로 연결할 것인지를 철저히 성찰하고, 경험하고, 예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이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질문은 이것이다.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명상 105일차, 구본형의 《나에게서 구하라》 전 포스팅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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