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욕망을 알아차린 후 꿈과 연결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나 왜 태어난거지?"



《나에게서 구하라_구본형》중에서,,


2장.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이 나를 구한다





구본형은 누구인가?

구본형의 명함에는 '변화경영 전문가'라고 적혀 있다. 마흔여섯 살에 직장에서 나와 스스로의 정체성이 필요할 때 그를 지탱하게 해준, 스스로 명명한 직업의 이름이다. 오십 대 중반을 맞아 그는 '변화경영 사상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불렀다. 말 그대로 기술적 전문인에서 변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일상에 녹여내는 사상가로 진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는 '변화경영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 시는 젊음의 그 반짝임과 도약이 필요한 것이므로 아마도 그 빛나는 활공과 창조성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처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 더 많이 어울리고 젊은이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할 것이다."


  구본형은 1954년 1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IBM에서 근무하며 경영혁신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했다. IBM 본사의 말콤 볼드리지 국제 평가관으로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조직의 경영혁신과 성과를 컨설팅했다. 2000년 3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회사를 떠난 그는 1인 기업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세웠고, 2005년부터 연구원을 선발하고 꿈벗들과 동행하며 '나'답게 살아가려는 이들을 도왔다. 10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여행했다.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내면에 잠든 열정과 비전의 불꽃을 점화시켜 삶이 아름다워지도록 도왔다. 


  인문학과 경영학의 다양한 접점을 통해 시대의 화두를 발견했고, 변화와 성장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즐겼다. 수년간 신화와 영웅담을 탐독하며 우리 내면의 변화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한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 변화의 시작은 자기혁명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삶의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고 글을 쓰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전하던 그는 2013년 4월,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구본형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글로벌 기업의 팀장이었던 그의 삶은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였지만, 내면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듯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6년간의 직장생활을 담보로 한 달 간의 귀중한 휴가를 얻어 무작정 지리산으로 단식을 하러 떠났다. 늘 발목을 붙잡았던 '밥'을 끊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포도만 먹는 단식이 일주일째 접어든 날이었다. 배가 고파 캄캄한 새벽에 일찍 깨었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그는 새벽을 아무 생각 없이 뒤척였다. 문득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는 늘 차선책을 선택했고, 그것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글을 써라. 너는 글을 써보고 싶지 않았느냐?"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소리쳤다. 그전까지 그는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언젠가 변화에 대한 책을 꼭 한 권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일어나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변화를 꿈꾸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듯 글을 썼다. 이것은 동시에 자신과 유사한 문제에 직면한 독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매일 두 시간씩 글을 쓰는 일은 새로운 인생을 위한 통쾌한 시작이 되었다. 글쓰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고 글을 쓰며 살아있음을 느꼈다.


  "글과 나 사이에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어떤 공명같은 것 말이다. 그쪽에서 북을 치면 내 마음 속에서 떨림이 느껴지는 이런 일체감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곤 했다."


  글을 쓰는 새벽 두 시간은 어떤 것과도 양보할 수 없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열 달쯤 지나서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출간되었다. 책은 기대 이상으로 잘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이 책으로 자신이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몰입을 통해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책의 성공 이후에도 그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새벽 글쓰기를 계속하여 매년 한두 권의 책을 더 출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년간의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자유로운 글쟁이가 되어 가을 하늘을 지난는 푸른 바람처럼 살았다. 늘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그 일을, 늘 미뤄만 오던 '진짜 삶'을 비로소 시작한 결과였다.

―박승오.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



욕망을 알아차린 후 꿈과 연결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나 왜 태어난거지?"



욕망처럼 강력한 자기격려는 없다.

  우리 모두 염소처럼 살아가는 호랑이들이다. 사회 속에서 조직 속에서 그렇게 길들여졌다. 우리는 어느 때 호랑이로서 자기 얼굴을 인식하게 될까? 그리고 호랑이로 포효하며 살아가게 될까?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염소는 싫어하고 호랑이는 좋아한다고 말이다. 내가 미워하는 것은 다만 우리 속에는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깊고 더 높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졸렬한 현재다. 


  나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 즉 자신이 주인공인 신화 하나를 만들어 갖기를 바란다. 불가능한 꿈을 꿀수록, 매일 그 불가능을 믿는 훈련을 통해 우리의 정신근육은 단련된다. 불가능한 일을 믿을 수 없다고?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일 가운데 어느 하나도 한때 불가능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누군가는 꿈을 꾸고 목표를 정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의 세계로 이끌려 왔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꾸자. 매일 꿈꾸는 연습을 하자. 아침밥을 먹기 전 불가능한 일 하나씩을 믿어보자. 그때 우리는 염소에서 호랑이로 전환하게 된다.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고,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라. 당신은 스스로를 좋아하는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욕망을 찾아 떠나라. 당신의 미래가 복제된 작은 도토리를 심어라.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꿈을 키우기 위해 써라. 밥 한 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선택된 욕망에 모든 것을 내주어라. 사랑해줘라. 그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있다.


  욕망은 깊고 깊은 곳에 있다. 스스로도 움켜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숨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망이나 충동이 아니다. 너무나 절실하여 우리를 행동으로 내모는 그런 것이다. 욕망을 가진 사람은 그것에 오랜 시간을 쓴다.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기도 하고, 자존심을 굽힐 줄도 안다.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그 일에 말할 수 없는 정열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


  욕망이 없는 삶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욕망과 화해하고 대항해 싸우는 수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욕망을 사랑한다. 욕망만큼 강력한 모티베이션은 없다.

  일상의 삶은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삶이 어려운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다. 욕망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몸속에 이미 이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병은 마음에 있다. 욕망을 잃은 삶은 죽은 것이다. 재미가 없다.


  중요한 것을 미루는 것은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바쁘다는 것 속에 모든 것을 묻어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금' 마음의 밭을 파헤쳐 잊고 있었던 욕망이라는 작은 도토리를 찾아내라. 주눅 들고, 삶에 지쳐 피곤한 당신의 무관심 속에서 빼빼 말라 시든 꿈의 원형을 찾아내라. 아직 살아있을 것이다. 심어라. 그리고 농부처럼 키워라. 언젠가 또한 스스로 농부가 키운 훌륭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상 104일차>



욕망을 알아차린 후 꿈과 연결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나 왜 태어난거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그저께와 그 전날도 3시가 안되서 일어난 것 같다. 휴대폰에 알람이 4시에 맞춰져 있어 편안하게 좀 더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그냥 벌떡 일어나 버렸다. '과장이 심하다고?' 천만에, 말 그대로 '벌떡!'이다. 눈이 떠지고, "좀 더 잘까? 그냥 일어날까?" 잠시 생각한 후에 "일어나자." 결론이 내려진 순간 '벌떡' 일어난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욕망하는 꿈을 키우는데 매일 두 시간을 투자하라고 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내 생각은 ★최소 두 시간이다) 욕망을 찾고, 그것에 미쳐 살아야 한다. 매일 두 시간 이상씩 미쳐 살아보자. 그 욕망이 꿈에 그리던 일을 뜻하거나, 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두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내가 새벽 두시 반에 벌떡 일어나는 이유는 꿈에 미쳐있기 때문이다. 매순간 나를 사로잡고 있는 강렬한 욕망과 꿈이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매일 4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4시까지는 잠을 자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꿈을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시간을 더 쪼개 쓸테니까.


무엇이라도 좋으니, 욕망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살자. 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면 더 좋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호랑이, 아니 보다 더 힘 세고, 존엄하고, 고귀한 존재로 태어났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깨지고, 실수하고, 좌절하면서 인생을 괴롭게 살아가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 한마디만 던져보자.

"내가 이럴려고 태어났나?"     



  욕망을 알아차린 후 꿈과 연결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나 왜 태어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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