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마음속 가시 빼내기 2탄! 그리고 알아차림 명상 97일차





마음속에 박힌 가시를 빼내기 위해서는 우선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가시'라고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시를 뽑을 것인지, 덮을 것인지 결정할 수가 있다. 그 가시가 외로움이나 우울함, 어떤 불편한 느낌일지라도 언제든지 뽑아낼 수 있다. 좋지 않은 감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가시를 빼내는 것이다.


가시를 빼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참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뤄지는 모든 생각과 활동들이 '순수의식', 즉 '참나'의 작용임을 받아들여아만 한다. 가슴에 가시가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주체, 통증을 느끼고 있는 나를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 거울 앞에 서서 옷 맵시를 점검하는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시각이 '참나'이고, '순수의식'을 가진 진정한 나다.


'지금 내게 이런 감정이 올라왔구나!',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며 일상에서 피고 지는 모든 생각, 감정을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는 '참나'를 모르고서는 그 어떤 감정과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시를 빼내야 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시의 통증에 매몰되어 고통만 느끼고 있는 사람이 다른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통증이 너무 심한데, 어떻게 하면 이 통증을 없앨 수 있을까?'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통증을 가라앉히는 방법이라고 해봐야 결국 마취제를 복용하는 것이 전부인 수준이다. 가시의 존재를 통증에 의해서든 감정에 의해서든, 그것을 알아차리고, 뿌리뽑아 치료하면 그 가시가 나에게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 가시 빼내기 2탄! 그리고 알아차림 명상 97일차



<명상 97일차>



마이클 싱어의 <마음속 가시 빼내기>, 그리고 명상 96



《상처받지 않는 영혼》

마음속 가시 빼내기


  이제 당신에게는 애정 관계를 걱정하는 짐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관계의 배후에 긴장감과 불편한 느낌을 일궈낸다. 그것이 잠을 설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경험하는 불편함의 뿌리는 외로움이다. 그것은 이런 식의 끝없는 생각들이다. '내가 말을 제대로 했나? 그녀가 정말 날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나 혼자의 착각일까?' 문제의 뿌리는 이제 더 깊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얕은 고민들 밑에 묻혀 있다.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결국 사람들은 인간 관계를 이용해서 자신의 가시를 감춘다. 존중하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보드라운 부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서로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예절이 되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벌이는 짓이다. 그들은 마음속의 가시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은 살갗에 가시를 지니고 사는 사람과 똑같이 자기 삶을 스스로 구속하고 만다. 하지만 내부에 혼란을 일궈내는 뭔가가 있다면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느낌을 피해 밖으로 나감으로써 혼란을 적당히 무마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평생을 매어 놓는 대신 그냥 그 가시를 빼버릴 수도 있으니까.

 

  내적 혼란의 근본원인을 제거해내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 그것을 정말 사라져 버리게 할 수 있다. 자기 존재의 속 알맹이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삶을 몰아가고 있는 당신의 나약한 부분을 이제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결심할 수 있다. 당신은 그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당신은 외로워서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해 줬으면 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들을 정말 좋아해서 인간관계를 맺게 되기를 원한다. 내면의 문제에서 도망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연애하게 되기를 원한다.


  자신을 어떻게 해방시킬 수 있을까? 가장 깊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해방시킨다.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그 고통이 아니며, 걸핏하면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그 부분도 아니다. 이런 혼란의 어떤 것도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신은 이것들을 인식하는 그다. 당신의 의식은 떨어져서 이것들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의 가시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면 그것을 만지작거리기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것은 건드릴수록 더 약이 오른다. 당신이 그 경험을 피하기 위해 늘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자신을 제대로 펼쳐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 혼란이 올라오게 하여 놓아 보낼 수 있다. 마음속의 가시란 과거로부터의 막힌 에너지일 뿐이므로 풀어놓을 수 있다. 문제는, 당신이 그것일 풀려나게 할 상황을 전적으로 회피하고 있든가, 아니면 자신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그것이 나오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속 가시 빼내기 2탄! 그리고 알아차림 명상 97일차



  당신이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고 하자.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주인공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 문득 외로움이 엄습하지만 당신에게 마음을 줄 사람을 아무도 없다. 흥미로운 것은, 당신은 몇 분 전만 해도 멀쩡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가시가 언제나 당신 가슴속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단지 건드려지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당신은 그 반응을 가슴이 공허한 느낌이나 덜컹 내려앉는 느낌으로써 경험한다. 그것은 매우 거북한 느낌이다. 나약한 느낌이 엄습하고 홀로 외로움을 느꼈던 온갖 기억들과 당신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과거로부터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가슴에서 풀려나서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TV를 보는 대신 생각과 감정의 물결에 휩싸인 채 홀로 앉아 있다.


  뭔가를 먹거나 누군가를 부르거나 그 밖의 다른 행위들로 가라앉히는 것 말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당신의 의식이 TV를 보고 있다가 지금은 마음속의 통속극을 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그가 바로 주체인 당신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하나의 대상이다.

  공허한 느낌은 하나의 대상이다.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느끼는 무엇이다. 누가 그것을 느끼는가? 당신의 탈출구는 누가 그것을 인식하는지를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이토록 간단한 것이다. 베어링과 바퀴와 수압장치가 달린 보호장비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지 누가 그 외로움을 느끼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는 그는 이미 자유롭다. 이런 에너지들로부터 행방되고 싶다면 그것을 속에다 감추지 말고 당신을 지나가게 해야만 한다.









  당신은 어릴 적부터 이미 속에서 움직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깨어나서 당신이 그 안에 있음을, 그리고 예민한 그가 당신과 함께 그 안에 있음을 깨달아라. 당신의 그 예민한 부분이 혼란을 느끼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 그것이 시기와 갈망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바라보라. 이런 느낌들은 인간본성의 일부일 뿐이다. 잘 보면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당신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일 뿐이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인식하는 내면의 존재다. 중심에 머물러 있으면 힘든 경험조차도 음미하고 존중하기를 터득할 수 있다.


  예컨대 가장 아름다운 시와 음악의 일부는 고난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다. 당신은 이토록 인간적인 경지를 그 속에 말려들거나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뭔가를 인식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고,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그저 지켜볼 수 있다. 그것이 당신의 자세에 변화를 가져오는가? 호흡이 느려지거나 빨라지게 하는가? 마음이 당신을 지나가도록 공간을 주면 어떻게 되는가? 이 모든 탐사하는 자가 되라. 그것을 지켜보라. 그러면 그것은 지나갈 것이다. 그 안에 빨려 들지 않으면 그 경험은 곧 지나가고 다른 것이 나타날 것이다. 그저 그 모든 것을 즐기면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내면에서 순수한 에너지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참나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어떤 에너지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마음과 감정을 경험하는 곳인 앞쪽보다는 뒤쪽으로부터 올라온다. 자신의 통속극에 빠져 있지 않고 인식의 자리에 깊숙이 물러앉아 있을 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이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 흐름은 샥티라고 불려 왔다. 이것은 '영'이라고도 불려 왔다. 이것이 내부의 혼란과 어울리지 않고 참나와 어울릴 때 경험되기 시작하는 현상이다. 외로움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어울려 들기만 멈추면 된다. 그것은 자동차와 풀과 별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온갖 사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들이 그저 지나가게 하라. 그것이 참나가 하는 일이다. 의식은 싸우지 않는다. 의식은 놓아 보낸다. 의식은 우주 만물이 그 앞을 행진해 갈 때 그저 그것을 인식할 뿐이다.


  참나 안에 머물어 있으면 당신은 가슴이 연약하게 느껴질 때조차 내적 존재의 힘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이 이 길의 본성이다. 이것이 영적 삶의 본성이다. 내면의 혼란은 느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음을 터득하고 나면,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당신의 의식의 자리를 흔들어 놓지 못함을 깨달으면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당신은 배후로부터 나오는 내적 에너지의 흐름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기 시작할 것이다. 이 내적 흐름의 황홀함을 맛보면 당신은 이 세상을 유유히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이 당신을 결코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길이다. 당신은 세상을 초월한다. 



마음속 가시 빼내기 2탄! 그리고 알아차림 명상 9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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