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85일차, 마이클 A. 싱어 '고통에 대처하는 법'



명상 84일차 포스팅에 이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마이클 A. 싱어가 알려주는 고통에 대처하는 법. 그리고 명상

  




《상처받지 않는 영혼_마이클 A. 싱어

제 11장

고통의 층 너머로 가기


당신은 더 깊이 들어가서 그 형성된 층들 간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한가운데에 고통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친구들과 바삐 어울려 다니고 그들의 받아들임 속에 자신을 숨긴다. 이것은 처음으로 한 층 벗어나 곳이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이 더욱 확실하게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친구들을 얻고 사람들을 움직이기에 유리한 태도를 기른다. 이것은 한 층 더 벗어난 곳이다. 그 각각의 층은 원래 고통과 맞붙어 있다. 이 때문에 일상적인 일들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날마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는 해우이들의 배후 동기가 속 알맹이인 고통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말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을 입증해 보이려는 이유가 속 알맹이인 고통이기 때무에 당신은 결국 매사를 고통의 빌미로 만들고 만다. 결국 당신은 너무나 예민해져서 상처받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 수 없게 된다. 가슴에 상처입은 사건이 없이는 사람을 만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조차 없게 된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가벼운 만남조차도 종종 다소간의 고통, 불안감, 혹은 마음의 혼란을 일으켜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좀 떨어져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시야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맑은 날 밤에 밖으로 나와 하늘은 한번 쳐다보라. 당신은 정말 망망한 허공 속을 돌고 있는 한 행성위에 서 있다. 당신의 눈에는 별이 수천 개 정도밖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은하수에만도 수척억 개의 별이 있다. 사실 나선은하계에는 1조 개 이상의 별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그런 은하계가 우리의 눈에는 하나의 별로 보인다. 다행히 보이기나 한다면 말이다. 당신은 그저 하나의 별 주위를 맴도는 작은 흙덩어리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도 당신은 정말 사람들이 당신의 옷차림이나 자동차에 대해 하는 말에 신경이 쓰이는가? 누군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면 정말 당황스러워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가? 어떻게 이런 덧없는 일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주도록 놔둘 수가 있는가? 여기서 나오고 싶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다면 심리적 고통을 회피하는 데에 더 이상 평생을 바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는지, 당신의 자동차가 멋져 보이는지를 걱정하느라 평생을 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무슨 놈의 삶이란 말이낙? 그것은 고통의 한평생이다. 당신은 자기가 고통을 그리 자주 느끼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통을 피하면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고통이 늘 바로 뒤에 붙어 있음을 뜻한다. 어느 순간에 미끄러져서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결국 당신은 고통을 피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고 만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나면 자신이 다시 근본적인 양자택일의 기로에 돌아와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 하나는 고통을 외면한 채 외부세계에서 계속 발버둥 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부의 고통을 피해 다니느라  평생을 허비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과감히 내면의 과정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의 함정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정말 그 고통을 품고 살면서 그것을 피하려고 밤낮 세상과 씨름하기를 원하는가? 고통에 쫓겨 다니지만 않는다면 삶이 어떻게 바뀔 것 같은가? 당신은 유유자적할 것이다. 그저 재미거리나 즐기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세상속을 유유히 거닐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신은 흥미진진한 경험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어떤 경험이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당신은 그저 죽을 때까지 당신의 삶을 살면서, 망망한 우주 속을 맴도는 한 행성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맛볼 것이다. 


  이 정도의 자유를 누리려면 내면의 고통과 혼란을 겁내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고통을 검내는 한 당신은 자신을 그것으로부터 보호하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두려움이 그렇게 실킬 것이다. 자유롭고자 한다면 내면의 고통을 그저 에너지 흐름의 일시적인 변동으로 간주하라. 이 경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무시하거나 병이 나면 어떨지, 누가 죽으면 어떨지, 혹은 다른 뭔가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일을 피하느라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 그러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변질될 것이다. 당신은 결국 일이 얼마나 잘못 꼬일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내면에 고통과 혼란을 일으켜 놓을 수 있는지 아는가? 아마도 하늘의 별보다도 많을 것이다. 삶을 마음껏 탐사하면서 성장해 가고자 한다면 가슴에 상처를 줄지도 모를 무수한 일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평생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제부터 고통은 문제가 아님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그저 이 우주에 있는 만물 중의 하나일 뿌니다. 누군가가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다. 그것은 일시적인 경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의 혼란 속에서 평화를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조차 못한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 편안해지기를 배우지 않으면 결국 당신은 그것을 피하는 데에 온 삶을 바치게 될 것이다. 불안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느낌이다. 하나의 느낌 정도는 당신도 소화해닐 수 있다. 당황스러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그저 하나의 느낌이다. 그것은 그저 이 세상의 일부분이다. 시기심에 속이 탄다면 그것을 그저 가벼운 상철르 바라보듯이 떨어져서 바라보라. 그것은 당신을 지나가는 세상 만물 중의 하나다. 그것을 웃어넘겨라. 그것을 즐거라.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이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 한 그것은 당신을 건드리지 않는다. 


  먼저 인간의 습관적 성향을 살펴봄으로써 이것을 탐사해 보자. 고통을 주는 어떤 것이 몸을 건드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추린다. 불쾌한 냄새아 맛에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사실은, 마음도 같다. 뭔가 혼란스러운 것이 마음을 건드리면 마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서 움츠러든다. 마음은 불안감과 시기와 그 밖에 우리가 거론했던 모든 감정에 대해 이렇게 반응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단지 자신의 내부 에너지 주위에 보호막을 치려는 의도로서 가슴을 '닫는다'. 우리는 가슴속에 움츠러더는 느낌으로써 그 결과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가 불쾌한 마을 하면 당신은 가슴속에 혼란을 느낀다. 그러면 마음이 이렇게 지껄이기 시작한다.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난 그냥 자리를 뜨고 이 사람들과 다시는 말하지 않겠어. 너희들 후회하게 될걸.' 당신의 가슴은 느끼고 있는 것으로부터 뒤로 물러나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 느낌을 다시 경험할 필요가 없도록 말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고통을 받아들일 힘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고통을 소화해낼 힘이 없으면 당신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슴ㅇ르 닫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가슴을 닫고 나면 마음은 차단된 에너지의 주위에다 온통 심리적 요새를 쌓는다. 마음은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들이 그른 이유와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궁리해낼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당신의 일부가 된다. 고통은 여러 해가 지나도록 내부에 남아서, 당신의 한 평생을 구성하는 벽돌이 된다. 그것이 앞으로의 반응과 생각과 당신의 기호를 결정할 것이다. 상황이 일으키는 고통에 대해 저항함으로써 반응한다면 당신은 마음속의 예민한 곳을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거기에 짜 맞추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결국 그 닫힌 것 주위에다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를 쌓아 올릴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가져올 장기적인 겨로가를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깨어 있다면 당신은 이 함정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꺼이 놓아 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당신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을 것이다. 고통을 피하는 습성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존재들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놔둔다. 그들은 온 가슴으로 삶 속으로 뛰어들지 도망 다니는 일에 삶을 허비하지 않는다. 삶이 내며느이 혼란을 일으킨다면 물러서지 말고 그것이 바람처럼 당신을 지나가게 하라. 마음을 혼란시키는 일들은 날마다 일어난다. 당신은 어느 순간에라도 불만과 분노와 두려움과 시기와 불안과 당혹감에 빠질 수 있다. 잘 지켜보면 가슴이 그것을 모두 밀쳐내려 애쓰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이런 인간적 감정들과 싸우기를 그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고통을 느낄 때, 그것을 그저 하나의 에너지로 바라보라. 이 내부의 경험들을 가슴을 지나가는, 의식의 눈앞을 스쳐가는 에너지로 바라보라. 그리고는 이완하라. 움츠러들고 닫는 것과 반대의 일을 하라. 힘을 빼고 놓아주라. 아픈 그곳을 정확히 맞대면하게 될 때까지 가슴을 이완하라. 긴장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라. 긴장과 고통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기꺼이 있을 수 있어야 하고, 거기서 이완하여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매우 깊은 성장과 변화의 기회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하려면 엄청난 저항을 느낄 것이다. 그 때문에 그것이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힘을 빼고 저항을 가만히 느끼고 있는 동안에도 가슴은 도망가서 문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고 할 것이다. 계속 이완하라. 어깨와 가슴의 힘을 빼라. 고통을 놓아 보내어 당신을 지나가도록 공간을 내주어라. 그것은 단지 에너지일뿐이다. 그것을 그저 에너지로 바라보고 놓아 보내라.





  고통의 주위를 차단하여 그것이 자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면 그것은 당신 속에 머물 것이다. 고통에 저항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역효과를 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왜 차단하고 못 지나가게 하는가? 그것에 저항하면 그것이 사라벼 버리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에너지를 풀어주어 지나가게 하면 그 때야 사라질 것이다. 가슴속에서 고통이 올라올 때, 마음을 이완하고 그것을 용기 있게 대면하면 그 때야 그것은 지나간다. 그것에 저항하고 가슴을 닫을 때마다 당신은 내부에 고통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댐을 쌓는 것과도 같다. 그러면 당신은 고통과 고통을 경험하는 당신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마음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마음속의 온갖 지껄임을 만들어낸다. 쌓아 놓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써 말이다.



명상 85일차, 마이클 A. 싱어 '고통에 대처하는 법'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