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재밌는 책《정신 화들짝 번쩍 나는 '병신육갑_김종성》



  철학자 이경신은 《죽음연습》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죽는 순간의 고통에 대한 것이건, 자기 존재의 소멸에 대한 것이건, 대개는 죽음을 떠올리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무게로 짓눌려지는 듯하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어가는 동안의 괴로움, 죽는 순간의 고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내 육신이나 영혼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오리혀 무서움보다는 어떤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영원히 증발한다는 상상을 해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지러움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죽음이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 고통(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이라는 것도 그리 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고통이 사랑하는 사람들,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의 이별, 존재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실감 등, 그 어떤 것이라도 인간에게는 닥치면 어떻게든 버텨내고 감당해내는 힘이 있다. 아무리 큰 고통과 걱정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죽음을 자주 떠올리고―자살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변하는 절대 진리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뜻한다.―준비하는 이유는 누누이 강조했던 것처럼, "원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원願이 욕심을 부르고, 욕심이 고통을 초해하기에······.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머니 자궁속에서 내 삶이 시작되었다. 의도했든 안했든 한 평생 살아갈 운명이 주어진 이후 현재까지 제법 긴 시간을 부지런히 살아냈고 앞으로도 마찬가질 일 것이다.

  후생유전학이라는 학문으로 인해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는 있지만, 조상님들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또는 획기적으로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는 없다.(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신경가소성과 후생유전학이 증명하기에) 모든게 '유전자의 틀'안에서 행해지는 다반사이다.


  고려 후기의 고승 나옹선사의 누님은 <부운>이라는 시를 읊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삶의 무상함을 드러냈다. 죽음이라는 이별을 통해 인간은 익숙하게 맺었던 모든 관계의 망에서 벗어나 절대 고독의 길로 떠난다. 나이가 많건 적건 지위가 높건 낮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평등하게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헐벗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늘 삶의 의미를 추구하여 살아왔건만 이제 공허함만이 남는다.

  시인은 묻는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와 존재하고 있으며, 삶을 떠나면 어디로 가느냐고,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출처와 거처를 알 수 없는 생을 살아가면서 맺어온 무수한 관계에서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다. 자연스러운 신체적 생명력의 소멸 과정과 직면한 모든 인간은 존재가 부존재를 향해서 가는 죽어감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인간의 마지막 권리_박충구》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태어난다. 성장하여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부모님의 은혜를 입고 자란다. 어머니의 자궁을 첫 집으로 삼아 인생을 시작한 이후 십 수개월을 어머니의 안락한 품을 보금자리로 삼고 성장하게 되는데, 이때는 '나'라고 하는 인식이 없다. 분리된 '자아'는 없고, 존재하는 그 몸은, 어머니와 육체적, 정신적으로 따로 있지 않고 하나로 받아들인다.








  무無의 상태에서 부모님의 은혜로 태어났지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생生'한 것은 '멸滅'한다는 진리 앞에서 그 무엇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無로 돌아간 우리는 흙과 나무, 공기와 물, 민들레와 나비 등으로 흩어져서 우주를 채운다. 결국 이 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부모님의 은혜를 간직한 '신성한 나'의 집합이지 않을까?



<명상 78일차>


<명상 79일차>


《정신 화들짝 번쩍 나는 '병신육갑'》에서,,

P41.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무서움의 대상은 성별이나 나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근본은 죽음이다. 당신은 무엇이 가장 무섭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을 못할 것이다. 사실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경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일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으로 인한 이 세상과 완전한 이별은 사랑하는 친족간의 이별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모든 생명은 내면의 깊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가장 무서운 것이다.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어 죽음의 체험이나 경험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경험하거나 체험했다면 가사상태인 가짜 죽음이지 ,정말로 진짜 죽었다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예수라면 모르겠으나? 하―하!


  인간들은 이 체험 해보지 못한 경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바보나 천치일수록 또는 동물근성이 강하게 있는 것일수록 죽음을 더욱 무서워한다.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단멸론자들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죽지 못한다. 죽음에는 고통과 아픔이 뒤따르니, 극도의 아픔은 곧 죽음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왜 두려워할가? 사실은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윤회를 통하여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경험해 왔기 때무에 죽음을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옥도 경험해 봤고, 천당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천당을 좋아하고 지옥을 싫어하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바로 무지無知와 무지無智이다. 이 무지無知와 무지無智가 두려운 것이다. 무지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을 치痴라고 한다. 탐내고, 성태고, 어리석음을 마음의 세가지 독소라 하여 삼독三毒이라 한다.


  욕망과 탐욕의 무지, 성냄과 질투 싸움의 무지, 오지 않은 미래의 것에 대한 괜한 걱정으로 지옥을 만드는 어리석음의 무지, 이 중에서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죽음도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지옥을 두려워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가보지 못한 지옥을 엄청 두려워하고, 가보지 못한 천당을 엄청 동경한다.

  기독교 놀리라면, 줄어서 반드시 지옥이나 천당 둘 중에 하나만을 가야한다. 잘 믿으면 천당, 못 믿으면 지옥, 양단간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하느님의 선택에 의하여 가야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영원히! 지옥은 두려움의 대상이요, 천국은 즐거음의 대상일 것이다.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과거 전생에서 무수히 많은 삶을 통하여 지옥과 천당을 오고가는 경험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지옥을 싫어하고 천당을 좋아하는 것이라 믿는다.


  불교의 천당은 삼계三界를 통하여 욕계欲界천상[천당] 4개가 있어, 최소한 선행을 한 사람은 욕계천상에 갔다 오는 경험을 했을 것이며, 악행을 한 사람은 18개나 되는 지옥을 갔다 오는 경험을 수만 겁劫을 통하여 해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지옥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것이다. 불경일사不經一事면 부장일지不長一智라 하낟. "한 가지 일에 경험이 없으면 하나의 지혜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혜란 경험에서 생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지옥이나 천당을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지옥에서 다시 인간계로 온다거나, 천당에서 다시 인간계로 온다는 것은 기독교 교리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옥이나 천당에 한번가면 거기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 천주교 기독교의 근본교리다.


  천당에 가서 천당에서 영원히 사니, 내성耐性이 생겨 천당인줄 모르고 살 것이고, 지옥에서도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니 거기에 사는 내성耐性과 습성이 생겨 괴로움 자체를 괴로우려니 그러려니 그렇거니 하고 괴로움이 일상인, 괴로움이 괴로움인 줄 모르고 살 것이니 천당도 천당이 아니요, 지옥도 지옥이 아닐 것이다.


  이 모두가 어리것은 인간들이 이치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로 혹세무민하는데, 정말로 이 사람들이 병신칠갑病神漆甲하여 지옥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칠갑漆甲이란 마음인 정신이 고착되어, 옷 칠과 같이 캄캄하여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구제불능을 의미하는 것으로 맹신猛信 맹신盲信 광신狂信자들에 해당된다.

  그러니 한번 교회에 물들면, 양단간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천당이라는 낚시에 코 끼어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은 코 끼는 날부터 생지옥이 가슴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빠져 나오려면 보지도 못한 지옥의 공포를 엄청나게 느껴야 한다. 온갖 엄포로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 공갈로 매일 찾아와 괴롭히는 일이 다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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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만이 이런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 누구나 99%는 이 사람같이 하고 싶은데, 체면상 못하는 것뿐이다. 이 사람은 기독교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걸머졌으니 얼마나 피곤하고 고단하겠는가?!> 한번 꿰이면 절대 못 빠져나갑니다. 알아서들 하세요.




하다하다 안되니, 이제 개도 나섰네요. 인간 여러분! 저 개도 전도하러 나왔슈! 나오기 싫었는디 ,주인이 인간은 이제 전도가 안 되니 개인 제가 나서야 한답니다. 저 좀 개답게 살게 해 주세요! 개답게...




<예수가 죽었을 때부터 줄곧 예수가 곧 온다고 외쳐댄 것이 2000년이 지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고 지금도 현혹되어 패가망신 가사탕진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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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재밌는 글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크게 공감하였을 내용이다. 내 마음은 이랬다. "있지도 않은 하느님(하나님)을 두고, 믿으면 천당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쉽기는 해도 신성한 존재를 믿고 안 믿고는 그들의 자유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점잖게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설득과 제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마저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면 '어디'가고 믿지 않으면 '어디'에 떨어지고······. 이런 믿음보다는 이런 마음가짐이 더 좋지 않을까?는 생각에 몇 가지 '자비'의 마음을 소개하고 싶다.


-정당한 이유로든 부당한 이유로든 수감된 모든 사람들,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그들이 탐욕과 분노와 혐오와 증오와 질투와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그들이 고통과 괴로움과 우울과 낙담과 염려와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출산의 고통을 겪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그들의 몸의 피 한 방울 한 방울, 모든 세포, 모든 원자, 모든 분자와 그들의 온 마음에 자비심이 충만하기를, 

-아이를 기르는 모든 외부모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그들이 인내와 용기와 이해심과 결단력을 갖기를, 

-그들이 불가피한 어려움과 골칫거리와 실패들을 이겨내기를, 

-어른들로부터 학대받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그들이 자비와 연민과 더불어 기뻐함과 평정으로 가득 차기를,

-그들이 관대해지고, 편안해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피지배자들과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과 차별당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그들이 인내와 용기와 이해심과 결단력을 갖기를,

-그들이 불가피한 어려움과 골칫거리와 실패들을 이겨내기를,

-세상 모든 존재들이, 그들이 어디 있든, 그 모양과 형태가 어떠하든, 두 다리를 가졌든 네 다리를 가졌든 혹은 아예 다리가 없는 존재든, 이미 태어났든 혹은 다음 생에 태어날 존재든, 행복한 마음을 갖기를,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속이거나 경멸하지 않기를,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해하고 싶어하지 않기를, 

-내가, 살아 있는 존재들 모두를 향해서, 위로도 아래로도 온 사방 어디로도 경계가 없는 사랑을, 증오와 혐오에 방해받지 않는 사랑을 일구기를, 세상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놓여나 완전한 평화를 얻기를,


"자비심을 기르면 좋은 곳에 간다."는 말이 더 와닿지 않는가!


사는 게 힘들어서 의지하고픈 대상이 필요하다면, 자신과 가족과 친구에게 의지하자. 그리고 엄한데서 시간낭비말고, 가만히 눈감고 앉아 진정한 나와 조우하자. 우주의 감동과 자연의 고마움을 느껴보자.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서 움직인다.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존재를 믿고, 존재의 말을 믿고, 존재를 따른다고 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우주를, 이 지구를, 인류를 사랑하면 가게 되는 곳이 천국이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자비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대의 집, 학교, 일터가 천국인데, 가긴 어딜 간다는 것인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죽기 직전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가까운 이들에게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보다는 마치 여전히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의 인사를 담은 편지였다. 데리다는 편지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는 그대들을 향하여 미소를 짓고

그대들을 축복하고

그대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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