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자아는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으로,,,





현재 나를 지배하고 있는 욕구는 '앎'이다. 아니지. 애초 충족될리가 만무한 것이라면 이것은 '욕망'이다. 그렇다. 욕망이 맞다. 또한 나는, 인간의 본성이 몹시 궁금하다. 각 개인마다 차별된 개성이 아닌,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본성. 이것을 궁금한 것이다. 인간의 행동, 그 이면에 감춰진 욕망, 그 욕망이 뜻하는 무엇, 그것은 결핍이면서 이기적인 욕심일테고, 그것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어디선까지 인정해야 하나. 


인간에게 자아가 있다면 에고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에고가 있나면, 나는(나의 자아)는 에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마음속 에고가 커지면 자아는 위축되고 결핍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에고를 조용히 시킬 수 있다면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자아가 고요한 상태에 머물 때, 참나(순수의식, 참자아 등으로 불린다)가 드러나는 것일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_김원영》에서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 등장하는 열두 살 진희는 엄마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할머니의 손에 자란다. 사람들은 진희를 안쓰러워하지만, 동시에 기피한다. 진희가 엄마의 정신질환을 물려받지는 않았을까 우려해서다. 진희는 어린 시절 사람들이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아를 보호하는 전략을 습득한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그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물론 그중에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진느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자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의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수치스러운 상황을 맞았을 때 눈물을 흘리거나 흥분한 나머지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행동한다면 수치심은 더 커질뿐이다. 그러니 '바라보는 나'를 안전한 곳에 모셔다 두고 '보여지는 나'를 지켜보며 냉정을 찾는 것이다.  자아를 둘로 분리하면 '보여지는 나'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게 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를 부수지 않으면서 나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아이고, 가엾어라. 그래 어쩌다 몸이 그렇게 됐니?"

  "장애인 할인을 받기 위해서죠!"

  직접적으로 당신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사람들 앞에 서면 서럽고 짜증이 솟구치겠지만, 역시 자아를 분리하면 통제력이 향상된다. 레스토랑에서 '노키즈존'을 예로 들며, 즉 '노장애인존'이라며 출입을 거부해도, 반 아이들 전체가 나를 '헥토'라거나 '다리병신'이라고 놀려도 우선은 모래성이 되어버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바라보는 나'에게 나의 본질(그런 것이 있다면0을 온전히 이양시킬 때 '보여지는 나'가 겪어야 할 배제와 놀림을 견딜 수 있다.


  불교의 관법觀法, 스토아학파의 '모욕을 견디는 기술' 등 자기 자신을 객관적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외부의 모욕이나 분노로부터 자아의 평온을 지키는 기술에는 오랜 전통이 있다. 인간 정신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어보듯 반성反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수치심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며 '보여지는 나'가 연극배우처럼 사람들 앞에서 특정한 역할을 연기하도록 지시할 수도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능력, 이를 학자들은 성찰성reflexivity이라고 지칭한다. 성찰은 어떤 행위나 인식에 나선 자기 자신을 더 깊은 곳에서 바라보는 인식 행위다. 1.8초에 한 번씩 휠체어를 밀고 이동할 때 성찰하는 나의 자의식은 그렇게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은 물론 그때의 감정과 인식도 마치 하나의 대상처럼 들여다본다. 사회학적 의미에서 성찰성은 이와 같은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으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르도록 통제하고 감시하는 특성을 포함한다. 







  우리가 장애나 질병, 또는 '헥토'라고 취급하는 내 신체의 외양과 기능이 주는 각정 한계와 멸시에 노련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고도로 성찰적인 자아를 가져야 한다. 이 자아는 타인의 시선을 날카롭게 감지하고, 그 시선이 나에게 꽃히는 순간 그 의미를 분별하며, 그것이 자아의 본질로 공격해 들어올 때 진지를 구축한다.('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의 본격적 분리). 성찰성을 발휘하면 '보여지는 나'가 앞장서서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분노를 전개하는 변론자의 배역을 수행한다.


  성찰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노련함의 근본 조건이다. 어떤 경우에서든 이 성찰 능력을 잃지 않는 기술은 모욕과 수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고도의 테크닉이다. 


  배역의 수행 능력이 탁월해질수록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상처를 피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연극(퍼포먼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비극과 희극을 연기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은 철저히 보호하면서도 세상이 원하는 배역은 성실히 수행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는 마치 삶을 게임처럼 대하는 태도다. 삶의 모든 순간은 일종의 공연이 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탁월한 공연자가 되는 데는 대가가 다른다.



자아는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으로,,,



변론을 종결하며

  앞에서 우리는 한 아이가 "피부 관리해야 돼"라는 말로 다른 아이가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게끔 이끄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자아는 사회 속에 투영되고, 사회는 자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나 정부, 혹은 정치인들이 엘리베이터를 덜 설치하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차별적인 법률을 제정한다 해도, 바로 옆에 있는 나의 가족, 연인, 친구, 혹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창출하는 상화작용의 무대에서 우리는 인격적 조냊로 대우받고 서로를 세심하게 존중하는 경험을 나눈다. 당신이 버스에서 만난 한 장애인에게 보인 작은 존중의 표현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나아가 그가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는 밑거름이 된다.


  예의 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의 손길, 무시와 냉대 속에 혼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 숙요 말을 거는 순간,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 · 정치적 실천. 그런 것들이 모여 자기 삶의 조건을 수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하고 탁월한 자아를 구축하게 한다. 그러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을 언어화하고, 법적인 권리로 만들고, 품위와 겉모양만 중시하는 품격주의자들의 세계에 구멍을 낸다. 모든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은 이제 법률이 되고, 헌법이 되어 우리 공동체의 최고 규범이 된다. 그런 규범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다시 자신의 친구에게 "피부 관리해야 돼"라는 귀엽고, 뭉클하고, 놀랍도록 탁월한 상호작용 기술을 발휘해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이념의 중심에 오는 세상을 향한 긴 순환을 시작한다.


  존엄의 순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보고 그를 더 사랑하게 되듯이, 우리는 나를 존중하는 상대방을 보고 그를 더 존중하게 되고, 나를 존중하는 법률을 보고 그러한 법의 지배를 기꺼이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관용하게 된다.

  다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자아는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으로,,,




 자아의 영향 아래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석가보니 부처님처럼 '아我'가 '무無'하다는 깨침을 얻기 전까지는 자아는 '나'의 정체성이 된다. 


  크리스 나이바우어는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에서,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아는 단지 환영일 뿐이다. 이제껏 보여준 것들에 기초해서, 신경심리학도 현재 똑같은 것을 암시하고 있음을 당신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확실히 해둘 것은, 자아가 환영리  뿐이라고 얘기할 때 그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사막 한가운데서 볼 수 있는 신기루 같은 현상에 가깝다. 오아시스 모습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보이는 오아시스 자체는 실체가 없다. 똑같은 이유로 자아의 이미지는 실재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자세히 보면, 그건 단지 이미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아시스와 자아의 이미지 줄 다 단지 하나의 개념 또한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만 거기 있는 것이다.

  좌뇌가 자아라는 환영을 창조하는 건 이렇다. 당신과 남들이 범주적으로 다르다는 패턴을 감지한다. 그렇게 관찰해 낸 것을 기억, 선호도, 그리고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조종사'로서의 관점을 합쳐 자아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각자의 자아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타인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느냐에 의존한다. '내가 아닌 것'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아는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으로,,,





'참 나'의 상태를 경험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마쳐야 하는 단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자아'에 관한 것으로써, '자아'를 '나(이해하기 쉽게 '순수한 나'로 정의하자.)와 동일시 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또 다른 나'로 인정 할 것인가. 이도 아니면 '자아自我'는 곧 '무아無我'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참 나'의 상태라는 것은 자아에서 '에고'가 사라진 상태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너'라고 말하는 '나'는 바로 '자아'를 뜻하는 것이다. 상대방 눈에 비친 '나'는 '나의 자아'임에는 분명한데,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네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은 '진짜 나(순수의식이든 참 자아든, 무엇이든 좋다.)'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나의 참 모습을 네가 무슨수로 알 수 있겠니? 나를 안다고 말하는 건 '네 자아의 큰 착각'일 뿐이야'"와 같은 생각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속삭임일까?


  크리스 나이바우어 박사는 좌뇌가 자아라는 환영을 창조한다고 했다. 나와 남들이 범주적으로 다르다는 패턴을 감지하고 관찰해 낸 것을 기억, 선호도, 그리고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조종사'로서의 관점을 합쳐 자아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자아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타인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느냐에 의존하기때문에 '내가 아닌 것'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남들과 구별되는 그 것, 자신들과 범주적으로 다른 여러가지 패턴을 감지한 후, 그것을 '나의 특성' '나의 본성'으로 간주하여 '나'라는 인간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나의 자아'이고, 좌뇌의 중요한 임무중 하나인 것이다.


  나의 자아는 내 안에 있지 않고, 타자들의 마음속에, 눈의 망막과 시신경에 있다. 그들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라고 인정받은 '그 자아'로 '내 자아'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누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자. 이것은 그의 좌뇌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일뿐,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다. 반대로 우리 각자는 좌뇌가 하는 일을 너무 믿지 않기로 하자. 나아가 우리의 '자아'가 품고 있는 생각과 마음, 정신, 사상, 이념, 관념 등 거의 모든 것은 '에고'의 작품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참 자아'에 대한 발견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우선은, 에고에 휘둘리는 자아를 보호하고, 감싸주고, 사랑해주자. 어찌됐든 자아는 나의 일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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