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깨나의 명상 69, 70《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_김성철》에서,,

2. 연기에 대한 분석


《중론》은 흑백논리의 양극단을 비판하기에 '중도론(中道論)'이기도 하지만, 그런 비판을 통해 그 전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생각들이 허구임을 자각하게 되기에 '공론(空論)' 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논리적 비판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던 연기설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지기에 '연기론(緣起論)' 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흔히 불교의 깨달음을 '달'에 비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한다. 하늘에 달이 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통해 달을 바라볼 수 있다. 연기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연기으 ㅣ진리가 '달'이라면,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해당한다. 우리는 연기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에 의지하여 연기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한다.


  앞 장에서 '연기'란 '얽혀서 발생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조건에서 결과가 발생한다'거나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한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유에 의해 축조된 이론 모두가 논리의 오류를 범한다'고 할 때, 이러한 '연기의 이론' 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중론》 제1 〈관인연품(觀因緣品 : 연기에 대한 분석)〉에서는 연기에 대한 우리의 분별적 이해가 범하게 되는 논리적 오류를 지적한다. 흑백논리의 벗어난 것이 '연기하는 세계'의 참모습니다. 그러나 그런 연기의 의미를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흑백논리적으로 작동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연기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인 '조건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판단은 다음과 같ㅇ ㅣ비판된다.


  결과가 조건 속에 미리 존재했다거나,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다.

  미리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런 조건은 무엇을 위해 일겠으며,

  미리 존재했다면 그런 조건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명상 70일차>



깨나의 명상 69, 70《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앞 장에서 씨앗과 싹의 예를 들며 설명했듯이, 결과인 싹이 원인인 씨앗 속에 미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씨앗이 어떤 싹을 틔울 것인지 알 수가 없고, 미리 존재했다면 싹을 갖는 씨앗이기에 굳이 다시 싹을 틔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건에서 결과가 발행한다'는 판단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이론을 구성할 수도 없고, 저렇게 이론을 구성할 수도 없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다. 이 게송에서 가르치는 것은 조건적 발생에 대한 '극단의 이론 양측'을 모두 비판하는 중도의 조망이다.


  또 '조건에서 결과가 발행한다'는 것이 연기의 의미라고 간주할 경우, 조건의 존재가 확고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항아리 공장에 진흙이 쌓여 있을 경유, 항아리는 결과에 해당하고, 진흑은 항아리의 조건에 해당할 것이다. 그 진흙은 '항아리의 재료'로서의 조건이란 말이다. 그러나 항아리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소급하여 그 진흙이 항아리의 조건이아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항아리가 아직 만들어지기 전에는 진흙에 대해서 항아리의 조건이라고 규정할 수 업다. 

  항아리 공장에 쌓여 있는 진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벽돌을 만들 수도 있고, 기와를 만들 수도 있다 .만일 벽돌이 만들어졌다면, 그 진흙은 별돌의 조건이었으며, 만일 기와가 만들어졌다면 진흙은 기와의 조건이었지 항아리의 조건을 결코 아니었다. 조건은 결과와 무관하게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용수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결과가 발생할 때,

  이것을 연(緣)이라고 부른다.

  만일 그 결과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비연(非煙)이라고 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연(煙)은 조건을 의미한다. 결과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연이라고 할 수 없다. 앞에서 비유했듯이 항아리 공장에 쌓여 있는 진흙이라고 하더라도, 항아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 '항아리의 재료'라는 낙인을 찢지 못하듯이, 방직 공장에 있는 실이라고 하더라도 옷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에 대해 '옷감의 재료'라고 규정을 하지 못한다. 인쇄소에 쌓여 있는 종이라고 하더라도 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책의 재료'라고 규정하지 못한다. 항아리 공장에 진흙이 '벽돌의 재료'가 될 수도 있고 '기와의 재료'가 될 수도 있었듯이, 방직 공장의 실은 '밧줄의 재료'가 될 수도 있고, 인쇄소의 종이는 '종이컵의 재료'가 될 수도 있다.


 






깨나의 명상 69, 70《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깨나의 명상 69, 70《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조건에 의지해서 결과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조건 역시 결과가 발생해야 그 정체가 규정되는 것이다. 조건이 없으면 결과가 있을 수 없고, 결과가 없으면 조건 역시 있을 수 없다. 초기 불전에서 연기를 설명할 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는 공식으로 간략하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용수는 이런 연기공식에 '조건'과 '결과'라는 개념을 대입하여 위와 같은 게송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a. 연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b. 연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 와 'c. 결과가 있으면 연이 있고,······ d. 결과가 없으면 연이 없다'라는 연기공식에서 a와 d만을 추출한 후, 이를 시적인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계송인 것이다. 



중론 -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국내도서
저자 : 김성철
출판 : 불교시대사 2004.08.25
상세보기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