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56,57일차, 철학자 최진석의 강연과 그의 저서들,,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읽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유튜브를 시청하게 된 이유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악방송에서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인생낭독》(진행자 가수 김현철)에 출연하셨더라고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최진석 명예교수의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으면서 완전 팬이 된 이후 다른 저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구입해서 읽고, 유튜브를 통해 강연이란 강연은 모두 찾아서 시청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어지는 글은 대한민국 대표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사상일 수도 있고, 깊은 사유의 결과값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명언' 위주로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유튜브 채널 《최진석의 새말새몸짓》 '생각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편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에요.

건너간다는 것은 모험하고 탐험하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 일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답은 멈추게 하는 일이고, 질문은 건너가는 일이에요.


건너가는 인간을 진짜 인간이라고 볼 때, 무엇에 대해서 많이 알기도 해야 되고 집행할 수 있는 힘도 있어야 되요.

그것을 동시에 갖게 해 주는 것으로는 책읽기가 최고에요.

책읽기는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수련'하는 일이에요."




"제가 철학자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독립'입니다.

'독립적 사유', '독립적 주체' 그것에서만 자유가 나오고 행복이 나오고 풍요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튜브 채널 《최진석의 새말새몸짓》 '생각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편



김현철 : 철학의 기본은 '나를 만나는 일'인가요?

최진석 : 철학은 인간이 하는 사유 가운데, 가장 높은 사유를 철학이라고 합니다.

가장 높은 단계에서 생각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유를 할려면은 '자기가 자기한테 분명해야 그것(높은 단계의 생각)을 더 잘하더라' 

그러니까 결국은,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죠.


김현철 : 근데 제가 저를 생각해도 아직까지, 알았다가 또 오늘 보면 모르는 것 같고, 또 내일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야' 아는 것 같고, 이게 불분명 한대요?

최진석 : 예, 근데 그건 자기한테 자기가 속고 있기 때문이거 같아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것이 자기한테 분명한게 가장 쉬운일 아니겠습니까? 가장 쉬운 일인데, 살다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 하고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 이 사이에서 방황하는거 같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자기한테 분명하면 모든 일이 단순해지고, 명쾌하고, 효과도 크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가 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둡니다.

자기한테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한테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김현철 :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최진석 : 항상 자기한테 묻는 습관을 갖는게 좋은거 같아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것을 자기한테 묻는 습관을 갖는게 중요하고요. '금방 죽는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아주 철저히 인식하며 살면 도움이 되요.



"우리가 '인생' 이렇게 개념화 하면 마치 그것이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 실재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개념일 뿐이에요. 짧은 것은 인생이 짧은게 아니라 '내 목숨'이 짧은 거에요. 내 삶의 시간이 짧은 것이지 인생이 짧은거 아니거든요.

'인생은 짧다.'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나는 금방 죽는다.'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인생은 짧다는 말은 '가짜 말'이고 나는 금방 죽는다는 말은 '진짜 말'이기 때문이에요."


"왜 나에게 집중하느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나 밖에' 없어요. 나 이외의 것들은 전부 내가 '해석'한 것들이에요."








명상 56,57일차, 철학자 최진석의 강연과 그의 저서들,,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훈고의 기풍은 대개 다른 사람이 만든 이론을 그대로 따라 배우거나 자기 삶의 근거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식 체계나 이념 체계에서 찾게 한다. 내 고유한 생각으로 내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해놓은 생각의 결과로 내 삶을 꾸린다. 왜 이렇게 되는가?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따라하기'는 쉽고 편하지만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요줌 TV를 보면 어느 방송국에서나 이런저런 음식 관련 방송을 한다. 소위 '쿡 방'이다. 그리고 어느 방송국에서나 이런저런 노래 경연 방송을 내보낸다. '쿡 방'을 처음 만든 사람이나 노래 경연 방송을 처음 만든 사람은 창의적 시도를 감행하면서 온갖 생각에 잠을 설치고 많은 불안을 극복하였다. 그런데 '쿡 방'이 인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다른 방송사에서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따라하기'한다.


이렇게 '따라하기'를 하면 최초의 사람이 겪었던 고뇌와 숙고와 불안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매우 편하고 안전하다. 편하고 안전한 느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따라하면서 느끼는 '쪽팔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스스로도 '쪽팔림'을 모르게 되어버린다. 매출이 올라가고 시청률이 나와주기만 하면 오히려 따라하고도 당당하다. '쪽팔림'이 사라지면서도 너도 나도 창피해하지 않고 따라하기에 동참한다. 염치를 모르는 사회가 되어버린다. 

  결국은 여기나 저기나 모두 아무 개성도 없고 차이도 없는 천편일률적인 방송으로 전락해버린다. '따라하기'가 주는 편안함과 안전함이 '쪽팔림' 마저도 느낄 수 없게 만들고, 결국 모두가 어떤 차별성도 없이 몰개성화되면서 공멸한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일은 이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들어야 한다. 이것이 '지적인 부지런함'이다.

  대답에만 빠지는 일도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미 품고 있는 지식과 이론을 요구에 따라 뱉어내기만 하는 일은 편하다. 이에 비해 질문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새로 등장하는 조짐이나 신호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로 즉각 반응하는 일도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무니다.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판단은 이미 내면화된 가치관을 근거로 해서 거기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만 따진다. 이때는 숙고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있는 가치관이 등장하여 즉각적인 판단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편한 길을 애써 피하고, 그 조짐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 부단히 숙고한다. 그렇기에 힘들고 불안하다. 힘들고 불안한 내면을 극복하고 계속 질문을 해대는 일은 지적으로 부지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창의적 결과나 독립적 활동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지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질문을 발휘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하여 궁금증과 호기심도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불편함을 이겨내고 질문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 때문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

  지적인 편안함에 빠져들면 들수록 인간은 급격히 늙어간다. 반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면, 그는 결코 늙은 사람이 아니다. 








명상 56,57일차, 철학자 최진석의 강연과 그의 저서들,,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공통의 틀 속에 들어가지 않는 여분의 것이나 사적인 것, 특수한 것은 제외하고 공통의 것, 일반적인 것만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개념'입니다. 


산이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북한산을 보면 북한산은 서운하겠어요? 안 서운하겠어요? 북한산은 서운하지요. 왜? 산이라는 공통의 개념으로 북한산을 보면 그 산이라는 공통의 개념에 들어가지 않는 북한산만의 어떤 것, 그것은 거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북한산을 다른 산이 아니라 바로 북한산이기에 해주는 북한산만의 특징은 포함되지 못하니까요.

  북한산이 북한산인 것은 다른 모든 산과 공통되는 특징 때문에 북한산이 아니라 다른 산들과 구별되는 그만의 특징 때문에 북한산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것을 빼 버리면 북한산은 서운하지요.


여러분, 꽃이 이 세계에 존재합니까?

  꽃은 존재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보는 것은 꽃이라는 명사에 속한 그것을 보는 거에요. 여러분은 꽃을 산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꽃을 산 적이 없습니다. 어디 가서 꽃을 샀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왜? 꽃이라는 일반명사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꽃집에서 산 그 장미, 그 백합, 그 국화 등등, 꽃이라는 명사 안에 들어가는 '그것'이 존재할 뿐이에요.


여러분, 멍멍 짖는 개를 본 적 많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이제 좀 난감한가요? 여러분이 "나 오늘 개를 봤다' 그러면 거짓말이겠죠? 여러분은 개를 본 적이 없답니다. 개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존재하지 않는 걸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그럼, 여러분이 보았다는 것은 뭡니까? 개라는 이름 속에 속하는 '그것'을 본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이념 따위는 잘근잘근 씹은 다음에 과감히 뱉어 버리세요. 이념 같은 딱딱한 명사들이 목울대에 걸려 있는 한 말캉한 동사들이 입을 통해 나오기 어렵습니다. 몸속에 들끓는 욕망의 꿈틀거림이 이념과 개념의 필터에 막혀 터져 나오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념 따위의 명사들은 몸 밖으로 뱉어 버리세요. 핏발 서린 이념의 눈빛은 얼마나 촌스러운지요······.


그런데 왜 우리는 개념의 구조로 되어 있는 지식이 우리의 구체적 실생활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까요? 왜 우리는 개념의 틀인 이념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까요? 왜 우리는 개념의 확신 체계인 신념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까요? 이것은 '개념'에 스스로 굴복당한 형국입니다. 마름을 주인으로 착각한 거지요. 마름은 개념이고, 주인은 실재하는 세계이자 바로 '나'입니다. 개념은 실재하는 세계와 살아 움직이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마름 같은 것인데, 이 마름이 오히려 실재하는 세계를 제어하거나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가 주인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는 것,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념이나 개념의 정체를 정확히 보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명상 56일차>



<명상 57일차>



욕망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최전선입니다. 삶의 무늬는 죽으나 사나 '나'의 무늬어야 합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던라면, 빨리 서둘러 돌아와야 합니다. 그저 묵묵히 내 삽을 들고 내 힘으로 갈고 파서 내가 갈무리한 내 이랑 사이를 걷습니다. 그러다 한 번씩 올려다보는 하늘은 더 이상 내 머리 위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도 밟고 설 수 있지요. 그렇게 하면 내 무덤까지도 내가 파고, 거기다가 내 맘에 드는 무늬의 자리를 만들어 깔고, 내가 '나의 시간'을 정하여 알아서 눕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겠지요. 그 자리에 눕기 전, 내 눈에는 제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를······ 아무것도 비추지 않기를······.



명상 56,57일차, 철학자 최진석의 강연과 그의 저서들,,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
국내도서
저자 : 최진석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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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국내도서
저자 : 최진석
출판 : 소나무출판사 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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