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위빠사나 명상51일차 <능숙한 알아차림>





『부처의 길 팔정도』

7장. 능숙한 알아차림


  알아차림은 매 순간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적이고 습관적이고 어리석음으로 조건 지어진 사고방식으로 자신과 세계를 지각하기 때문에,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그 지각에 따른 사고의 개념화는 산만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알아차림은 모든 개념과 이미지와 가치 판단과 의식적 논평과 소신과 해설들을 잠시 유보하라고 가르친다. 알아차리는 마음은 간명하고, 꿰뚫어보고, 균형 잡혀 있고, 혼란스럽지 않다. 그것은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왜곡 없이 비치는 거울과 같다.


  부처는 "알아차림을 앞에 두어라"라고 제자들에게 자주 말했다. '앞에'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뜻한다. 이는 좌선하고 있는 동안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우리가 행하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 움직임을 분명히 이해하라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지금 이 자리에 있으라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음의 순간순간은 영사기를 통해서 영상들이 연속적으로 투사되는 것과 같다. 이 영상들은 감각기관의 접촉에서 온 것들이거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혹은 미래에 대한 환상에서 온 것들이다. 알아차림은 감각과 경험이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응대나 습관적인 반응에 의해 왜곡 됨 없이 영상을 감각기관에 비친 상태 그대로 인식하게 한다.







  일단 일어나고 있는 것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알아차리기를 익히고 나면 전형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의 특정 양식에 휩쓸리는 법 없이, 또 그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알아차림은 생각과 행동의 부정적인 양식을 방지, 극복하고, 긍정적인 양식의 계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우리에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을 도와준다.


  여기에 더해, 알아차림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명료하게, 왜곡하지 않고 "내적으로 보는 것(inner seeing)," 즉 통찰지혜가 생기게 해준다. 정해진 알아차림 명상 시간 동안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는 동안에도 규칙적으로 명상하면, 알아차림은 내적 지혜의 눈으로 세계와 우리 자신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지혜(wisodm)는 통찰지혜의 극치다. 이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 알아차림의 진정한 목적이다.



위빠사나 명상51일차 <능숙한 알아차림>





  실재의 본성에 대한 통찰지혜가 영원한 평화와 행복에 대한 궁극적 비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가 지헤를 계발하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전해 내려오는 다음 이야기는 이를 뒷받침한다.


  옛날에, 행복의 비결이라는중요한 비밀을 숨기고자 하는 신이 있었다. 신은 먼저 그 비밀을 바다 밑에 숨기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야, 비밀을 거기에 숨겨서는 안 되지. 인간들은 아주 영리해서 언젠가는 찾아낼 것야."

  다음에는 비밀을 동굴 속에 숨기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도 마찬가지로 물리쳤다. "동굴 속은 구경꾼들이 많은 곳이잖아. 아니고 말고. 거기 있는 비밀도 사람들은 찾아낼 것야."

  그런 다음에는, 비밀을 가장 높은 산 위에 숨기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곧 신은, "요즘 사람들은 호기심이 아주 많지. 언젠가는 누가 그 산에 올라가서 그걸 찾아낼 거야." 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그는 완전한 답을 생각해냈다. "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곳이 생각났다. 인간의 마음속에 이 비밀을 숨겨야겠다."


  그 신은 진리를 인간의 마음속에 숨겼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찾기로 하자! 알아차림은 외적인 것을 겨냥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의 목표는 우리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 것이다.  








  자리를 잡고 깊은 심호흡을 서너 차례 한 후, 눈을 감고 호흡 명상을 시작합니다. 코 끝을 스쳐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들숨을 알아차리고, 배의 꺼짐을 느끼면서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아 고요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밖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에 마음이 흐트러지기 일쑤지만, 이를 곧 알아차리고 나서 다시 호흡에 집중하면 처음 시작할때보다 빨리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전히 자세가 흔들리고, 꾸벅 꾸벅 졸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내가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잘 쉬었다."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밝혔지만, 제가 명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깨달음, 열반에 이르게 하는 '불교의 통찰지혜'가 아닌 정상적인 세속의 삶에서 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 위함입니다. 또한, 불교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탐·진·치(탐욕.성냄.어리석음)에 대해서 소멸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진·치를 범하고 있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서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 즉 '마음의 독'을 빨리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본디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순간을 알아차림함으로써 밝게 빛나는 광채를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깨닫지 못한 마음의 경우는, 그 광채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불순물로 가려져 있어서 빛나고 있는 마음을 어둡고 초라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차림을 통해 불순한 장애물을 태워버리고, 제거한 만큼 더 편안하고 행복하고 더 밝게 빛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빠사나 명상51일차 <능숙한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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