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위빠사나 명상 45일차 , 타라 브랙의『자기 돌봄』과 함께······.



타라 브랙의『자기 돌봄』 중에서(지난 포스팅에 이어)

 <바쁘다는 것은 마음을 죽이는 일이다>

우리는 문득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순간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도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들이느라 바쁘다.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의 판단에 따라 이러저리 움직인다. 미래를 걱정하고 수많은 계획과 다짐을 세우느라 잠시도 생각을 놓지 못한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지만 늘 뭔가 빠져 있는 것처럼 허전하다.


  한자 '바쁠 망忙'은 '마음 심心'과 죽을 망亡'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바쁘다'에는 '마음을 죽인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보통 '정신없이 바쁘다.'는 말을 즐겨 쓴다. 그런데 정신이 없다면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서서히 삶의 속도를 높여가며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간다.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을 구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삶의 궤도를 바쁘게 밟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지혜로부터, 그리고 가슴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친숙했던 주위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모든 일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불편해한다.

  이때 느끼는 낯섦과 불안, 불만, 부벙, 허전함은 내 본래의 가슴, 편안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종의 '향수병'이다. 향수병은 태어난 집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다. 본래 순수하고 고요하고 평안한 존재로서의 '나'가 바로 나의 '집'이자 '고향'이다. 그 집을 잃어버리거나 너무 멀어졌을 때 우리에게는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일어난다. 

  향수병을 낫게 하려면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깨어있음은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내가 느끼는 현재의 모든 감각과 감정을 자각함으로써 '나'라는 순수한 존재에 마음을 열게 한다. 나의 '집'에 돌아온 나는 비로소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위빠사나 명상 45일차 , 타라 브랙의『자기 돌봄』과 함께······.



가슴과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

  깨어있기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어떠한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 바로 보는 것이다. 깨어있기mindfulness는 '마음책김'으로도 번역하는데, '가슴챙김heartfulness'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마음mind과 가슴heart은 어떻게 다른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마음과 가슴을 동일어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은 어떤 현상에 대해 머리로써 판단하고 일으키는 나의 반응이며, 가슴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보는 순수한 '나'다. 

  즉 진짜 '나'는 가슴에 있다. 그 가슴을 닫아둔 채 내 경험과 판단이 지어낸 마음을 좇아가기 때문에 우리 삶은 계속 불안하고 갈등하고 불행한 것이다. 깨어있기는 바로 내 마음의 모습과 현재를 자각함으로써 가슴속의 진짜 '나'를 깨우치도록 이끈다.


  가슴속의 진짜 나를 알면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마음을 다룰 수 있다. 시시각각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감정과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게 한다. 이는 소금과 물로 비유할 수 있다. 만약 작은 그릇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거기 담긴 물은 매우 짠맛이 날 것이다. 하지만 호수에 조금 넣는다고 호수에서 짠맛이 나지는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호수라면 지금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고 품어 안을 수 있다.


  마음챙김과 가슴챙김, 이 두 날개는 호수처럼 드넓은 공간으로 '나'라는 존재를 이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쉬어 갈 공간을 내면에 만들어준다. 그 공간은 '사랑에 찬 현존' 이라는 성소다. 그 성소에서 나는 나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존재'로 거듭난다. 자연이 모든 인간의 생명체 안에 심어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찬 현존이란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위빠사나 명상 45일차>



위빠사나 명상 45일차 , 타라 브랙의『자기 돌봄』과 함께······.







알아차림과 깨어있음은 오직 한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강조하는 불교와 수행, 명상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거의 모든 영적 지도자들이 강조하고 있는데요. 법정스님은 자신의 책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순간순간 자각하라.

한눈 팔지 말고, 딴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피라.

이와 같이 하는 내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대의 길을 가라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

너무 긴장하면 탄력을 잃게 되고

한결같이 꾸준히 나아가기도 어렵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날라마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이유는 '이 순간'들이 한 생애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들이 없으면 생애도, 인생도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지금'일 뿐입니다. 지금을 사는게 '잘 사는 삶'이고 '바람직한 삶'입니다. 

  

  '지금'을 사는데 마음과 생각이 장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허황된 망상, 원인도 모른 채 겪는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 등은 그 순간들을 지배하면서 우리 모두를 '현존'의 상태에서 멀이지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법정스님이 하신 말씀처럼, 과거나 미래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은 소멸해 버립니다. '항상 현재일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습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합니다. 매 순간 깨어있으면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수행을 하든, 명상을 하든, 다른 무엇은 하든, '지금 이순간에 깨어있는 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위빠사나 명상 45일차 , 타라 브랙의『자기 돌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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