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41일차, 위빠사나 명상, 법륜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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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깨어있기_법륜』 

책을 접으며 '어떻게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것인가 


  지금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나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살려고 해서 잘못 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되 지금부터는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전환하면 됩니다. 혼자면 혼자여서 좋고 둘이면 둘이라서 좋은 삶을 사세요.


  남편이 고집이 세고 문제가 많은 경우 그런 남자와도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면 앞으로 어떤 사람과도 원만히 살 수 있고 또 남의 문제까지 상담해줄 능력이 생깁니다. 까다로운 사람과 살면서 안 부딪혀 본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되고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 이야기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지요. 공자는 악처와 살았기에 지혜가 넓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자 입장에서 보면 공자 같은 사람과 살면 악처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공자가 무조건 위대하다고만 보면 안 됩니다. 남이 볼 때는 위대하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문제도 많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모두 문제고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공자 같은 사람, 부처님 같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우리가 사물을 보는 눈을 좀 새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꼭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거나 반드시 감옥에 가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살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맞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면 깨달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깨달음을 경험해 보려면 먼저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세요. 어떤 사람은 자기는 다 깨달았으니 안 가도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워낙 바쁘니 못 간다고 합니다. 오만을 부리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 끌지 말고 직접 한 번 부딪혀 보면 자기 인생에 얼마나 큰 복이 되는 경험인지 알게 됩니다. 다녀오면 그것으로 끝내지 말고 매일매일 매 순간 깨어있음을 유지하며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그 동안 살아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행동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담배는 처음에 끊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끊고 나면 한동안 아주 좋지요. 그러다가 어떤 경계에 심하게 딱 부딪히면 담배를 도로 피웁니다. 이렇게 뭐가 안 풀린다 싶으면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게 돼요. 습이란 게 그래서 무서운 거에요. 이 때 도로 주저앉지 말고 습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습을 뛰어넘으려면 매일매일 꾸준히 정진해야 합니다. 꾸준히 정진하면 원래의 업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유혹이 제어가 됩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루 이틀은 하고 안 하고에 큰 차이가 없어 보여요. 하지만 기도를 지속적으로 오래 하면 큰 경계에 부딪혔을 때 엄청난 힘이 됩니다. 화내고 짜증내며 자기가 잘했다고 하는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지만 아침 기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반성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이렇게 화내고 짜증낼 거면 기도는 왜 하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하는 사람이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하며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지요.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기도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가 점점 벌어집니다.


  따로 수행도량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터가 그대로 수행도량이고 나에게 순간순간 일어나는 이 모든 시비분별심이 수행과제입니다. 그렇게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편안해집니다. 머리가 희어지면 희어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주름살이 생기는 대로, 병이 나면 병이 나는 대로, 부도가 나면 부도가 나는 대로, 사람이 죽으면 죽는 대로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며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 미연에 안다면 나쁜 일은 막아내어 좋은 일을 만들고, 이미 지었다면 과보를 받고, 과보를 받는 것이 힘들면 다음부터는 안 짓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독일에 갔다가 박사 공부하는 학생을 만났어요. 박사가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제가 가면 내내 법문만 들으러 옵니다. 좋게 말하면 불심이 깊고 나쁘게 말하면 공부 안 하는 거죠. 그래서 법문 듣는 것이 좋은가, 공부하는 것이 좋은가 물었더니 법문 듣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으로 데려왔어요. 부모가 보면 속 터질 일이지요. 그래도 그것이 훨씬 낫습니다. 박사학위 따려고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걸 굳이 10년, 30년 후로 미룰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행복하게 살면 돼요.


  우선은 자기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어요. 스스로 점검하면 좋지만 어려우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고민거리가 90퍼센트는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그러고 나면 매일 정진해야 합니다. 잡다한 곳에 마음 쏟는 시간을 줄이고 딱 집중해서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어서 언제라도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것이빈다. 내 삶을 떠나서 다른 허공을 쫓거나 죽은 뒤를 쫓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와 종파를 떠나서 내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공부입니다. 현재의 삶 속에서 그런 공부를 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인생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해탈, 열반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고 맑으면 맑은 대로 좋고 추우면 추운 대로 좋고 또 더우면 더운 대로 좋아요.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명상 41일차, 위빠사나 명상, 법륜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 




<명상 41일차>



  어제 아침 지인이 "사람이 오래 살려면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이게 장수의 비결이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속으로 '형님이 책을 읽으셨나?' 싶었습니다. "맞아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라고 맞장구 쳤고, 이어지는 대화도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어제의 대화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었어요.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고 부르는데, 정 반대의 의미를 내포한 행복이 만병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스트레스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괴로운 마음'이 암세포를 키우는 꼴이죠. 반면, 행복은 암세포를 죽이기도 하고 발생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암에 걸린 환자가 대체 의학의 힘을 얻어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찾기까지의 치료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건강을 되찾기까지 상당하고 엄중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큰 공포와 불안감을 심어 놓기에 충분합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고, 행복이 만병의 백신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행복을 선택하면 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열심이 일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크고 좋은 물건을 소유하면 그게 행복인 줄 알아요. 또 가족 모두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할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개인은 돈을 벌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속을 비우고 똥을 싸고 속을 비우는게 아니에요. 또 큰 집, 좋은 집에서 살려고 피똥 싸가며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집에서 살려면 뭐하러 집을 짓고, 벽돌 공장같은 아파트에 들어가서 삽니까. 하늘을 지붕삼고 대지를 침대 삼으면 될 것을요. 차는 또 어떻습니까, 아무리 큰 차도 헬리콥터만 못하고, 아무리 좋은 헬리콥터도 비행기만 못하다면, 지금보다 수 십, 수 백, 수 천배 더 열심히 일해서 전용기 한대 장만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가족, 이게 문제입니다. 이성적인 머리는 '나와 가족'을 분리하고, 동일시 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족은 나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써 지켜내야 한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때에 따라서는 명命을 포기할 수도 있는 귀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머리와 마음이 싸우면 대부분 마음이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 놓습니다.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을 찾는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뭣 좀 하려고 하면 항상 눈에 밟히는 게 가족이죠. 좋아하는 것이라도 할라치면 배우자와 자식 생각에 '에잇! 내가 좀 참으면 되지' 하고 그만두기 일쑤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가족이고 누구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 역시도 마음 한켠에서는 가족을 배제하거나 차단한 것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만약 어떤 순간,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가족에 대한 생각은 잠시 내려 놓고, 이 일과 나와의 관계만을 따져서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가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 '가족의 불행이 내 행복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이 말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린 결정은 절대 가족의 불행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가족은 나를 이해할꺼야!' 라는 믿음이 근본에 깔려 있는 한, 때에 따라서는 오직 '나'만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몇 년 전, 부모님께 "행복하세요? 자식들 뒷바라지 하신다고 힘들기만 하셨는데 후회되지 않으세요?"라고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아니 괜찮아.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짧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힘들긴 했지만 괜찮았어. 남들도 다 힘들게 사니까. 산다는 것이 힘든거니까'라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까지도 그때의 부모님 말씀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힘든건 괜찮은 게 아닌 고통스러운거고, 힘들지 않고 즐겁게 사는 사람도 충분히 많고, 무엇보다 산다는 것이 힘든게 아니라 힘들게 살기 때문에 '힘든 삶'이 되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하고, 힘들다고 느끼고, 힘들다고 믿기 때문에 힘들어 지는거지 본래부터 힘든 건 없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 대신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선택하여 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상 41일차, 위빠사나 명상, 법륜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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