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36일차 <위빠사나 수행하라. 그리고 알아차림하라.>





《사념처 명상의 세계_묘원》에서


  알아차림이란 기억과 알아차림의 두 가지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알아차림에서 말하는 기억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이미 지나간 것을 또올리는 그런 기억을 말하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에서 말하는 기억은 목전에 나타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여기로 와서 있는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기억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현전(現前)하는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이때의 기억은 과거를 회상하는 그런 기억이 아니고, 붓다의 법에 대한 선업과 관련된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알아차리는 것을 기억하여 알아차리고, 알아차릴 때는 알아차리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알아차림을 지속해야 합니다. 기억과 알아차림이 하나가 되어야 올바른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번뇌를 막아서 보호하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면 계청정이 이루어집니다. 위빠사나라고 할 때 '위(vi)'는 다르다, 분리하다, 라는 뜻으로 대상을 객관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분리하지 않으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대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은 사마타 수행과 달리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 다음에 있는 '빠사나(passna)'라는 말은 통찰한다는 뜻과 지속적으로 알아차린다는 뜻이 함게 있습니다. 이처럼 위빠사나의 통찰은 그냥 알고 마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아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이때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 위해서 바로 기억이 필요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팔만사천법문을 알아차림 하나라고 합니다. 팔만사천법문을 줄이면 37조도품이고, 다시 37조도품을 줄이면 팔정도고, 팔정도를 줄이면 계정혜 삼학이고, 계정혜를 줄이면 바로 알아차림 하나입니다. 이처럼 수행자는 항상 알아차림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명상 36일차 <위빠사나 수행하라. 그리고 알아차림하라.>



주석서의 알아차림

  "알아차림은 마음이 들뜸으로 치우치는 믿음, 정진, 통찰지로 인해 들뜸에 빠지는 것을 보호하고, 게으름으로 치우치는 집중으로 인해 게으름에 빠지는 것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이 알아차림은 모든 요리에 맛을 내는 소금과 향료처럼, 모든 정치적인 업무에서 일을 처리하는 대신처럼 모든 곳에서 필요하다."








붓다

  붓다께서는 "알아차림은 모든 곳에서 유익하다. 무슨 이유인가? 마음은 알아차림에 의지하고, 알아차림은 보호호써 나타난다. 알아차림이 없이는 마음의 분발과 절제함이 없다"고 설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알아차리면 다음과 같은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청정해지고, 둘재는 슬픔을 극복하고, 셋째는 비탄을 극복하고, 넷째는 육체적인 고통이 소멸되고, 다섯째는 정신적인 고통이 소멸되고, 여섯째는 올바른 길인 팔정도에 도달하고, 일곱째는 열반을 성취하여 지고의 행복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유언을 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마지막 유언으로 "와야담마 상카라 아빠마데나 쌈빠데타(vayadamma sankhara, appamadena sampadetha)"라고 빨리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더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뒤에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붓다께서 마지막으로 남긴 이 말씀은 "모든 것은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여 완성시켜라"입니다. 변하는 성질을 가진 것은 무상(無常)을 말합니다. 그러니 무엇도 집착할 것 없이 열심히 알아차려서 사념처 위바사나 수행을 하여 열반을 성취하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알아차림이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감을 알아차림 하나로 집약하고,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잊지 않음이란 아마빠다의 법을 붙잡는 것이 됩니다. 잊지 않음을 붙잡고 있으면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어서 고요함이 생기고 지혜가 나빈다. 지혜가 나면 모든 것을 관용으로 받아들입니다. 잊지 않고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이 이미 계율을 지켜 청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 하나만 있으면 팔만사천법문을 관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교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할 때, 만약 여러분들이 자비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사마타 수행밖에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위빠사나 수행자는 주저 없이 '알아차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른 수행을 몰랐기 때문에 알아차림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자비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자비에서의 알아차림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선정의 고요함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또 자비가 있는 곳에서는 윤회가 거듭됩니다. 물론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는 선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비가 아닌 통찰지혜를 일이키는 알아차림을 한다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번뇌가 불타서 궁극의 열반을 성취하여 지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쩨따시까 우리마음 지켜보기_Nina van Gjorkom에서

  해로운 마음과 해로운 마음부수는 유익하지 않고, 이익이 되지 않으며, 깨끗하지 않고 순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이 해로운 마음인지 알고 계신가요? 유익한 마음이 없을 때에 우리는 해로운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거나 생각을 합니다. 불친절이나 가친 욕망에 대한 생각은 않지만 해로운 마음일 수 있습니다. 유익한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에서는 대부분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이미 일어난 일이나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이 유익한 마음이고 어느 순간이 해로운 마음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공상을 할 때 유익한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해로운 것입니다. 해로운 마음은 나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해롭게 합니다. 

  해로운 행위와 말 그리고 생각 때문에 우리 자신은 불행해집니다.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해로운 행위는 정신적인 병입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병보다도 더한 파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로운 마음의 위험과 불행한 과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유익한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하지만 유익한 마음이 사라진 다음에는 또다시 해로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 해로운 마음의 순간에는 유익한 행위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명상 36일차 <위빠사나 수행하라. 그리고 알아차림하라.>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나쁜 말을 하면서 화를 냅니다. 시간이 지나면 화를 내는 순간들은 사라집니다. 그때가 되어야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그런 나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궁극의 실재들의 관점에서 보면 자아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유익한 행동을 하게 하고 다른 때에는 해로운 행동을 하게 하는 자아라는 것은 없습니다. 때로는 유익한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대부분은 해로운 마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해로운 마음을 일어나게 하지 못하는 자아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실재들에 대한 바른 지혜를 개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꿈속에서 헛것을 보면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고 유익한 것이며, 무엇이 해로운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선한 성품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에서 '유익한 마음이 없을 때에 우리는 해로운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거나 생각'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해로운 마음을 없앰으로써 유익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어리석음 · 양심없음 · 수치심없음 · 들뜸 · 탐욕 · 자만 · 성냄 · 질투 · 인색 · 후회 · 의심 · 번뇌 · 폭류 · 속박 · 매듭 · 취착 · 장애 등 해로운 마음부수들을 억누르고, 관리함으로써 유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saddha)에는 통제 기능(indriya)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기능은 동반하는 담마(법, 현상)들에 대하여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다섯 가지 통제기능들은 수행자가 닦아야만 하는 '정신적인 기능들'입니다. 믿음과 정진, 마음챙김, 선정과 지혜가 그것입니다. 이렇나 기능들은 이것들과 반대되는 오염들을 제압합니다. 믿음은 함께하는 마음과 마음부수들을 청정하게 하고 유익한 행위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유익한 마음 그리고 이 마음과 함께하는 마음부수들은 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명상 36일차 <위빠사나 수행하라. 그리고 알아차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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