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35일차 <위빠사나와 명상 그리고 행복>





『사념처 명상의 세계_묘원』에서


행복론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 불행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 세상에는 세상의 질서가 있어서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순간부터 행복에 취해 파멸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있는 자들이 힘을 남용해서 파멸하는 경우는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행복이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이 불행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어서 불행해질 만한 일을 스스로 선택하여 행했기 때문에 불행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살아온 습성이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욕심을 부리고, 계속해서 미워하고, 계속해서 다투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북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옳은 것을 옳다고 알고, 그런 것을 그르다고 압니다. 하지만 어리석으면 옳은 것을 그르게 알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압니다. 어리석으면 하는 일마다 거꾸로 합니다. 그래서 불행하고, 불행 때문에 행복을 갈망하지만 정작 행복을 찾는 바른 길을 모릅니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부귀영화, 무병장수, 이성간의 사랑 등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완전한 행복일 수 있을까요? 네, 행복은 분명 행복이지만 불완전한 행복입니다. 가져도 만족할 수 없는 행복, 가지지 못해서 불행한 행복, 가지면 사라질까봐 두려운 행복을 우리는 불완전한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행복은 이기적인 욕망에 속하기 때문에 얻을수록 갈증을 느낍니다. 이 갈증이 고통이 됩니다. 또 얻었다고 하더라도 사라질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섭리를 거스르는 행복은 이미 행복이 아닙니다. 얻어도 더 얻기 위해 괴롭고, 얻어도 사라질까봐 괴롭다면 이것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의 행복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복을 세간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세간의 행복은 불완전한 행복입니다. 그러나 세간의 행복을 뛰어넘는 출세간의 완전한 행복이 있습니다. 세간의 행복은 가져도 만족할 수 없어 괴롭지만, 출세간의 행복은 가진 것을 집착하지 않아 괴로움이 없습니다. 세간의 행복은 자신만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출세간의 행복은 남의 행복도 배려합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은 숭고한 정신입니다. 

  세간의 행복에는 항상 불안 요소가 있지만, 출세간의 행복은 언제나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행복은 세간의 행복을 뛰어넘는 출세간의 행복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일이며 가장 보람 있는 일입니다. 







  인간은 모든 생명 중에 가장 강력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잔인한 마음에서부터 가장 자애로운 마음까지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최상의 정신적 지혜를 얻어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행복과 불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최상의 권리입니다. 이러한 권리를 슬기롭게 사용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어리석게 사용하면 스스로 불행해지게 합니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내가 행복하다면 행복해지는 일을 해서 받은 결과입니다. 현재 내가 불행하다면 불행해지는 일을 해서 받은 결과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원인이 있어서 생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행복과 불행에 대하여 조금도 억울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원인으로 인해서 현재를 경험하지만, 현재 새로운 원인을 만들면 그것이 지금이나 미래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바뀔 수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해서 갖는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밖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변하면 밖에 있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이제 세간의 행복을 뛰어넘는 출세간의 행복을 차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출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출세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상 35일차 <위빠사나와 명상 그리고 행복>


<명상 35일차.1>



출세간의 행복을 찾아서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출세간의 행복을 찾아서 떠나려 합니다. 저와 함께 가시면 완전한 행복을 찾으실 수 잇습니다. 출세간의 행복을 지향한다고 해서 세간의 행복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간의 행복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간의 행복 바탕위에서 출세간의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출세간의 정신적 상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세간이 없는 출세간은 없습니다. 출세간이란 세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추구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구입니다.


  이 출세간의 행복은 여러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믿음과 의지로 노력을 해야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행복과 불행은 오직 자신이 선택해서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상세하게 행복과 불행을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의심에서 벗어나 확신에 찬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심으리 하면 믿음이 생기지 않고, 믿음이 없으면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여러분들이 법을 탐구해 볼 것을 권합니다.

  여기서 법에 대한 탐구는 명상 주제를 알아라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뒤에 확신이 서면 믿음을 가지고 수행을 하는 것이 정신세계의 바른 길입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믿어버리면 맹목적 신앙이 되어 지혜가 계발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편안하게 명상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 35일차 <위빠사나와 명상 그리고 행복>



<명상 35일차.2>



수행의 목표는 '열반'에 드는 것.

열반에 든다는 말을 쉬운 생활 용어로 '지속가능한 행복을 유지하는 것'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이런 행복이 아니고 늘 행복이 유지되는 건데, 늘 행복이 유지되는 것은 늘 즐거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다.  


질문자 : 행복하고 싶습니다.

법륜 : 당신의 지금 상태가 어떠한가?

질문자 : 별일 없습니다.

법륜 : 그럼 당신은 지금 행복한거야. (자기가 행복한데 행복한건지 몰라요. 왜?)

기분이 쇠한거를, 쾌락을 행복으로 삶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행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한 번 살펴보세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해서 만나면 행복하죠? 기분이 좋죠? 그런데, 그 만나는 사람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행복하려고 결혼하지만 결혼때문에 괴로워지고, 자식을 낳아서 행복한데 또 자식때문에 괴로워집니다. 가계문을 여는 것이 행복이었는데 열고 나니 괴로움이 생깁니다.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면 불행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괴로움이 없는 경지, 그게 행복입니다. 그게 열반입니다.

  건강하다 함은 100미터를 12초에 달리고, 턱걸이는 50번을 해야 하며, 팔굽혀펴기를 100번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 아픈것이다.



☞법륜스님의 행복론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유튜브」 바로가기



행복은 괴롭지 않은 상태 

건강은 아프지 않은 상태 

지혜는 이런 사실을 아는 상태








행복은 관용과 자애, 지혜에서 온다고 합니다. 명상을 시작하기 전, 제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지혜'를 얻는데 있었습니다. 타자에 비해 지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든, 우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었든 간에, 독서를 하면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명상'이라고 하는 마음공부(마음챙김)를 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명상을 하면 선한 마음이 되어 탐욕이 있을 수 있는 자리에 관용이 들어섭니다. 명상에는 두가지 이익이 있는데, 하나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순간 관용이 있기 때문에 이익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순간 탐욕이 없어서 이익입니다. 세간의 마음에서 탐욕이 있을 때는 탐욕이 있는 세간의 행복을 얻습니다. 출세간의 탐욕이 없는 마음을 가질 때는 관용이 있는 출세간의 행복을 얻습니다. 탐욕이 있는 행복과 관용이 있는 행복은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탐욕이 있는 행복으로는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없고, 관용이 있는 행복일 때만 완전한 행복을 얻습니다. 탐욕으로 얻는 행복은 만족이 없고, 관용으로 얻은 행복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명상을 하면 성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애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상을 하면 어리석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지혜가 들어서는데, 이런 관용, 자애, 지혜의 선한 마음이 완전한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로써 김찌는 35일차 명상을 마쳤습니다. 이 시간만큼 더 행복해졌고, 지혜로워졌기를 바라면서 오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상 35일차 <위빠사나와 명상 그리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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