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위빠사나 명상 28일차, <알아차림의 정의 9가지!>



『위빠사나 명상_가장 손쉬운 깨달음의 길』에서

<알아차림은 무엇인가>


1. 알아차림은 거울식 사고(mirror-thought)다. 그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만을, 일어나는 방식 그대로 정확하게 반영한다. 왜곡은 없다.


2.알아차림은 판단 없는 관찰이다. 그것은 비판 없이 관찰하는 마음의 능력이다. 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책망하거나 판단하는 일 없이 사태를 본다.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다. 다만 그 사태의 꾸밈 없는 상태 그대로에 균형 잡힌 관심을 갖는다. 결정하지도 판단하지도 않고 그냥 관찰만 한다. '결정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고 할 때, 명상가는 아무 선입견 없이 현미경 아래의 물체를 관찰하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인 과학자와  흡사하게 경험을 관찰한다는 뜻임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같은 방법으로 명상가들은 무상(無常), 불만족, 무아(無我)를 알아차린다.


3. 우리가 어떤 체험을 갖게 되든 알아차림은 그냥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그냥 삶의 또 하나의 사건, 자각해야 할 또 하나의 것일 뿐이다. 울쭐댈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중요한 것도 없다. 있는 건 있는 것이다.


4. 알아차림은 치우침 없는 주목이다. 그것은 편들지 않고, 인식된 내용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인식한다. 알아차림은 기분 좋은 심리 상태에 들뜨지 않고, 기분 나쁜 심리 상태라고 회피하지도 않느다. 유쾌한 것이라고 매달리거나, 불쾌한 것이라고 달아나지도 않는다. 알아차림은 모든 경험, 모든 생각, 모든 느낌을 똑같이 취급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억누르지 않고,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알아차림은 편파적이지 않다.


5. 알아차림은 비개념화된(nonconceptual) 자각이다. 사티의 또 다른 번역어는 '열린 집중(bare attention)' 이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고나 개념에 말려들지도 않고, 관념이나 견해나 기억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냥 바라볼 뿐이다. 알아차림은 체험들을 재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그것에 꼬리표를 붙이거나 범주화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처음 일어나는 일인 듯이 관찰만 한다. 그것은 회고와 기억에 근거한 분석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고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식 과정에서 사고 이전에 온다.







6. 알아차림은 현재순간(present moment)의 자각이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현재에 머문다. 영원히 지나가는 시간의 일렁이는 물마루 위에 머무는 것이다. 당신이 2학년 때 선생님을 떠올리고 있다면 그것은 기억이다. 그런데 자신이 2학년 때 선생님을 회상하고 있다는 것은 자각한다면, 이것은 알아차림이다. 


7. 알아차림은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경계다(nonegotistic alertness). 알아차림은 자아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알아차림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모든 현상을 '나를,' '나의,' '내 것'과 같은 개념과는 무관하게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의 왼쪽 다리에 통증이 있다고 해보자. 보통의 의식에서라면 "나는 아프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알아차림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 감각을 그냥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나'라는 가외의 개념은 덧붙이지 않는다.


8. 알아차림은 변화에 대한 자각이다. 그것은 경험이라는 지나가는 흐름을 관찰한다. 그것은 사태가 변해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것은 현상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익어가며, 쇠하고, 멸하는 것을 지켜본다. 알아차림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상황을 지켜본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신체적, 심리적, 감정적 현상들을 관찰한다. 명상가는 의자에 깊숙이 앉아 쇼를 지켜보기만 한다. 알아차림은 지나쳐가는 개개 현상들의 기본 속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9. 알아차림은 참여하면서 관찰하는 것이다. 명상가는 참여자인 동시에 관찰자가 된다. 어떤 사람이 자기 감정이나 신체의 감각을 지켜보고 있다고 해보자. 그는 같은 순간에 그것을 느끼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지적인 자각이 아니라 그냥 자각이다. 거울식 사고라는 비유는 여기서 무너진다. 알아차림은 객관적이지만, 차갑거나 무정하지 않다. 그것은 삶에 대한 깨어 있는 체험이자, 진행 중인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주의 깊은 참여다.



위빠사나 명상 28일차, <알아차림의 정의 9가지!>



<깨.나.마 위빠사나 명성 25일차>



위빠사나 명상 28일차, <알아차림의 정의 9가지!>



<명상 28일차 시작에 앞서.>



  명상의 알아차림에는 세 가지 기본 활동이 있다고 한다. 이 세 가지 활동들을 이용해서 '알아차림'의 기능적인 측면을 정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알아차림은 우리가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셋째는 '알아차림은 모든 현상의 본질을 본다'는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알아차림의 기본 활동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알아차림은 당신이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일깨워준다.

  명상 상태에서 당신은 한 가지 대상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마음이 이 초점에서 벗어나 방황할 때, 당신의 마음이 헤매고 있고 당신이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는지 일깨워주는 것이 이 알아차림이다. 마음을 명상 대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알아차림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즉석에서, 내면의 대화 없이 일어난다. 알아차림은 생각하지 않는다.  

  명상 수행을 되풀이 하다 보면 이런 기능이 심리적 습과능로 자리잡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은 나머지 생활 영역들에도 옮아간다. 진지한 명상가는 정식으로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늘상 사건들에 온전히 집중한다. 생각에 빠지는 습성은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집요하게 들러붙기 마련이다. 알아차림 상태에 있으면 자신이 자신의 사고 유형에 붙들려 있다는 것 알아챌 수 있다. 그 사고 과정에서 손을 떼게 해주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알아차림은 인식에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것도 왜곡하지 않는다. 그것은 열린 집중이어서 무엇이 나타나든 그냥 그것을 바라보기만 한다. 반면에 의식적 사고는 사물들에 우리의 경험을 덧바르고, 개념과 관념으로 우리는 짐 지우며, 계획과 걱정, 두려움과 상상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알아차림 상태일 때 당신은 그런 놀이를 하지 않는다. 당신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대로를 그냥 정확히 알아차리고 다시 다음번 일을 알아차린다. '아, 이것······ 지금은 이것' 하는 식으로. 그건 정말로 아주 간단하다.


  알아차림은 모든 현상의 본질을본다

  알아차림만이 인간 관찰에 유용한, 가장 깊은 수준의 실채를 드러낼 힘을 가진다. 이 최심부의 수준에서 관찰해보면, 누구나 (ㄱ) 조건지어진 것은 모두가 본디 무상하고, (ㄴ) 세속의 모든 것이 결국에는 불만족스럽고, (ㄷ) 정말로 불변하거나 영원한 실체란 없으며, 오직 과정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걸 안다.

  알아차림은 전자 현미경처럼 작동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너무나 정밀한 수준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껏해야 의식적 사고 과정에 따른 이론적 구성물 정도만 실제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알아차림은 모든 인식의 덧없음을 본다. 그것은 인식되는 모든 것들에서 덧없음과 가변성을 보고 조건지어진 모든 것들에 내재된 불만족성을 본다. 그것은 이 스쳐가는 쇼들에서 뭔가를 움켜쥐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음을 본다. 평화와 행복은 그런 식으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은 모든 현상에 내재된 무아성(無我性)을 본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특정 인식묶음을 임의로 선택하여 굽이쳐 밀려오는 체험의 물결에서 그것을 떼어낸 다음, 지속적인 개별 실체로 개념화하는지 보는 것이다. 실재로 알아차림은 이런 것들을 본다. 그것은 그것들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 직접 그것들을 본다.








위빠사나 명상 28일차, <알아차림의 정의 9가지!>






  어제 회사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한 직원은 작업도중 제품이 떨어지는 바람에 발등을 다쳤다. 또, 입사한지 얼마 안된 직원과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엄연히 선배인 직원과 작은 마찰을 빚었다. 그리고, 정년 퇴임이 지난, 나이가 지긋하신 직원과 앞서 얘기한(나이 어린 선배) 직원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다른 사건이 있다는 것은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어제 아침 회사 버스(직원 출퇴근용)를 운행하는 직원(환갑을 지난 분으로써 개인적으로 '형님' 호칭을 쓴다)이 내게 와서 넌지시 말씀하신다.

  형님 : 만약, 내가 버스를 운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 : 글쎄요. 다른 사람을 구하지 않을까요? 직원중 한명에게 버스 운행을 맡기던가, 새로 직원을 뽑지 않을까요?

  형님 : 그렇겠지? 애들이 마스크를 안써! 쓰라고 해도 안써!

  나 : 에휴······.


  할 말이 없었다. 그 상황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버스를 타고 있는 직원 대부분이 '지적장애인'이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코로나19를 상당한 위협으로 생각하고 계신다. 왜 아니겠는가! 생명과 관계된 일인데··· 코로나19에 대해 그분들이 느끼는 그 위기감은 젊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굳이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젊은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나을 수 있다는, 즉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코로나19의 감염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위에서 다친 직원도, 마찰을 빚었던 선배 직원들은 공교롭게도 지적장애인이다. 두산백과에서는 지적장애인을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고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저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두뇌의 일부분만을, 또 몸의 자연치유력을 망각한 채 병원과 약국으로 떠돌아 다니기 일쑤다. 갇힌 생각과, 편협한 사고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부른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꽉 막혀있다. 그런줄도 모른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떳떳하다고 한다.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정신병이 맞다. 지금은 장애등급이 없어졌지만, 예전 6등급으로 분류할 때의 기준에서 우리 모두(지적 비장애인) 7 · 8 등급의 장애인이었다.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다.


  이 시간 현재 세계 인구는 78억 6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모든 사람이 지적장애인이다. 내가 어제 보았던, 그 전에도 존재했던 모든 일들,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아니다. 이 말도 틀렸다. 우리는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실체도 근거도 없는 '정상'이라는 개념을 누가 있어 정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잠재능력을 개발한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거에만 몇 사람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 휴 렌 박사는 '우리들이 찾는 모든 것,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다고 설명한다. 뭔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밖'이 아니라 '안'에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전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원망할 사람은 없다. 모든 게 다 내책임이니까'라고 말한다.


  누군가 물었다. "하지만 가령 누군가 성폭행을 당했다면요?" "자동차 사고는요? 우리가 그 모든 일을 책임질 수는 없잖습니까."

박사가 물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곳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이것은 모든 일에 백 퍼센트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내키지 않는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진 않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요."

  휴 렌 박사는 정신병원에서 일할 때 만났던 살인자와 성폭행 범에 대해서 책임을 졌다. 그들이 기억 혹은 프로그램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도우려먼 그 기억들을 제거해야 했고, 방법은 정화밖에 없었다. 그는(휴 렌 박사) 그들(살인자와 성폭행 범)의 진료 기록을 읽으면서 신성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포스팅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는 내 생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훗날, 오늘을 '가치 있는 날'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부터 나는 내가 속한, 경험하는 이 세상을 '나의 우주'라고 명명했다. 내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 나는 모든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정신과 육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를 더 성장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인간에겐 근본적인 '성장의 욕구'가 있다고 하는데, 깨어 있는 사람일 수록 성장의 욕구는 더 강할 것이다. 여기서 깨어 있음은 지혜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혜로운 사람일 수록 부족하다 느끼고 성장을 추구한다. 어느 순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추앙받게 되지만, 그때조차도 '나는 부족한 사람, 더 성장하고 깨달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멈춤 없는 각성의 기회로 받아들일 것이다.  


  어제 나는 여러 사건들을 목격하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무지無知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참지 못해하던 내가 어제는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며 내 마음을 보려고 노력했다. 또, 그런 현상이 왜 발생한 것인지 이해하고 싶어했다. 이런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명상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현상 자체를 알아차렸고, 나서지 않음으로써 그들과 나와의 사이에서 어떤 감정이 생성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고요하고 차분하지 못한 마음 상태에서는 옳은 생각과 행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제와 같은 바람직한 행동을 지속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제서야 자각한 '나의 우주', 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가 만들어 낸 결과이고,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내가 준비되지 않으면 나의 우주는 비틀어지고 얼룩질 것이다. 발생하는 모든 생각과 감각, 이것들의 파동이 내 우주 안에서 비 정상적인 사물을 만들어내고, 사건과 사고로 이어지게 놔둘 수는 없다. 나는 깨어 있어야 한다.  



위빠사나 명상 28일차, <알아차림의 정의 9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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