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24일차 <명상에 대한 오해 5가지와 알아차림의 기적>





명상에 대한 오해 5가지《위빠사나 명상_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중에서······

명상 23일차에 이어,


오해 7. 명상은 현실 도피다.

틀렸다. 명상은 현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명상은 당신을 삶의 고통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명상은 삶과 삶의 모든 측면 속으로 깊이 파고든 다음에야 당신이 아픔의 장벽을 뚫고 괴로움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특히나 위빠사나는 현실에 직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수행법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체험하고, 삶에서 발견한 것 그대로를 직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오해 8. 명상은 희열에 이르는 굉장한 방법이다.

글쎄.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명상이 희열에 찬, 가슴 뿌듯한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늘 이러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런 상태를 기대하면서 명상하면 오히려 명상의 진짜 목적인 자각 키우기를 위해서 명상할 때보다 그런 현상이 덜 일어나곤 한다.

  희열감은 긴장의 해소로 인한 이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명상에서 희열을 일부러 구하게 되면 명상 과정에 긴장을 끌어오게 되어, 전체 고리가 흐트러지고 만다. 이것이 딜레마다. 말하자면 희열을 구하지 않을 때에만 그 희열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지극한 행복감 내지 기분 좋은 느낌뿐이라면 그런 건 술이나 마약같이 더 쉬운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다. 희열을 얻는 것은 명상의 목적이 아니다. 그건 자주 일어나긴 하지만 그냥 부산물에 불과하다.


오해 9. 명상은 이기적이다.

  확실히 그래 보인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작은 방석 위에 그냥 죽치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가 헌혈을 하는가? 아니다. 그가 이재민을 돕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동기가 뭔지 잠시 살펴보자. 그는 왜 명상을 할까? 그의 의도는 자기 마음속의 분노와 편견과 악의를 정화하는 데 있다. 그는 자기 마음속의 욕심과 긴장과 무심함을 없애는 데 에 열심이다. 이것들은 타인에 대한 자비심을 방해하는 바로 그런 요소들이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기전에는 그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에고의 확장일 뿐, 결국에는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못하기 쉽상이다. 

  숙련된 명상가들의 개인적 삶을 찬찬히 뜯어보라. 그러면 그들이 인도주의에 헌신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것이다. 사실 그들이 자신의 경건한 이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십자군인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다. 우리 에고는 그 행동 반경만 자유로이 허용되면 가장 고상한 행위조차 허접쓰레기로 만들어버릴 방안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명상은 우리가 이기심을 드러내는 온갖 미묘한 방식들을 깨닫게 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자각하게 해준다. 사실 그런 다엠에야 비로소 참으로 이타적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자신의 이기심을 씻어내는 명상은 전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해 10. 명상을 하는 건 고상한 생각을 하며 앉아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수행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빠사나는 그렇지 않다. 위빠사나는 자각을 닦는 수행이다. 그것이 최상의 진리든 허접쓰레기든 상관없이 모든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것이다. 물론 수행 중에 고상한 영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것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구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럿은 그저 기분 좋은 부수 효과일 뿐이다.

  위빠사나는 단순한 수행법이다. 그것은 삶의 사건들에 의레 덧붙곤 하는 선호나 선입견 없이, 그것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수행이다. 


오해 11. 두어 주만 명상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명상은 만병 통치약이 아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도 금방 볼 수는 있지만, 정말로 근본적인 효과가 있으려면 최소한 몇 년은 걸린다. 이것이 우주의 작동 방식이다. 가치 있는 어떤 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보면 명상은 결코 손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장기간의 훈련과 때로는 고통스러운 수행 과정을 요구한다. 좌정할 때마다 약간의 결과들을 얻긴 하겠지만 그래봤자 아주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그 결과들은 훨씬 나중에야 드러난다. 



명상 24일차 <명상에 대한 오해 5가지와 알아차림의 기적>



<명상 24일차.1>


<명상 24일차.2>


《알아차림의 기적_아남 툽텐》에 "불교 경전에는 붓다가 마침내 깨달았을 때 온 땅이 흔들리고 천상의 신들이 나타나서 축하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기이한 사건들은 깨달음이란 기적과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비유입니다. 정말로 깨달음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물론 오로라나 눈앞에서 꽃이 활짝 피는 것을 보는 것도 기적이듯이 우리 삶은 기적으로 가득하지만, 그중 가장 큰 기적은 깨달음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매인 마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새로운 현실을 직접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매인 마음은 대게 슬픔의 세계나 개념 · 관념의 세계에 익숙한 반면에, 깨달음이란 모든 한계를 벗어난 세계이고 사랑과 기쁨과 지혜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깨달음이란 누구나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통찰입니다······."는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깨달음 운운하니 뭔가 '어렵고 경험하기 힘든 마음의 상태 혹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의식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글을 쓰면서 사용하는 '깨달음'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나 자각된 상태'라기 보다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통찰력과 지혜로움이 상승된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제가 명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힘은, 현실에서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 모든 어려움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 즉, '통찰과 지혜'일 것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려는 내용 역시 《알아차림의 기적_아남 툽텐》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 이런 의식에 대한 밀접한 비유이자 과학적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자면 갓난아기의 존재를 말할 수 있습니다. 갓난아기의 얼굴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순진무구함입니다. 병원의 신생아실 앞에는 유리창 너머에 있는 잠든 아기들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갓난 아기들의 완전함을 바라보면서 불현듯 깨달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있습니다. 걱정거리도 미워하는 사람도 안중에 없습니다. 통장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도 마음속에 떠올리지 않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기들을 바라보면서 깨달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정말 그랬더랬습니다. 저와 아내는 갓 태어난 우리 아이를 보면서 평화를 느꼈습니다. 시간은 멈추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취를 감춘것 같았습니다. 저 스스로는 물론이고, 옆에서 같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아내도 그 순간만큼은 부모가 아닌, 그저 경이(驚異)로움에 넋을 빼앗긴 우주의 구성물질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오롯이 우리 아이만 존재 할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였고, 자체로 평화였으며, 본인 스스로 행복이었습니다. 당시 아내와 제가 느꼈던 감정을 사랑과 행복, 평화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겁니다. 그때 그 공간에서 울려 퍼지던 감동의 파동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경험할 수 없는 최상의 환희였기에 저와 아내는 순수한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다는 것이 당시 아이가 탄생하여 존재함으로써 스스로 빛을 발하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면, 우리 모두는 과거에 한번 깨달았던 존재, 깨달음을 주었던 존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갓난아기와 같은 순수한 참본성이 있다고 아남 툽텐을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제한된 존재가 아니고 더이상 희망이나 절망의 족쇄에 매여 있지 않으며, 원인과 조건에 상관없이 자애롭고 자비로우며 전혀 두려움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의지와 목적도 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되는 힘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빛이었던 존재는 사라지고 에고의 욕망에 장단맞추기 급급한 초라하고 가엾은 인간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빛이 되는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에고의 존재를 인정하고, 욕망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명상 스승들은 위빠사나 명상이나 비슷한 목적의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 에고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에고의 완전한 무력함'인지 아니면 '에고와의 공생'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에고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깨달음도, 마음의 평화도, 진실한 사랑과 행복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명확한 것 같습니다.



명상 24일차 <명상에 대한 오해 5가지와 알아차림의 기적>



위빠사나 명상
국내도서
저자 :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 손혜숙역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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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의 기적
국내도서
저자 : 아남 툽텐(Anam Thubten) / 이창엽역
출판 : 담앤북스 201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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