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22일차, 법구경, 위빠사나 명상,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오늘로써 명상을 시작한지 22일이 지났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명상 또한 처음 시작했을때의 낯설움은 많이 사라진 상태로 점점 안정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시 말슴드리지만 제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마음 상태를 고요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명상을 할 때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시간을 '고요한 깨어있음'의 상태로 있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지혜를 발휘하기 위함 일 것입니다.


  불교의 《법구경》은 팔리(Pali)어로 씌어진 담마파다(Dhammapad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경전의 이름으로, '진리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팔리어는 석가모니가 평소에 사용했던 고대 인도어의 하나이며, 그가 팔리어로 말한 423구절의 시구를 2세기에 인도의 불교학자인 달마투라타가 편찬한 것이 바로 지금 읽히고 있는 《법구경》입니다.


  법구경에는 "지금 당신 모습은 예전 모습의 결과이고, 내일의 당신 모습은 지금 모습의 결과일 것이다. 사악한 마음의 결과는 소가 끄는 짐수레같이 당신을 따라갈 테지만, 저오하된 마음의 결과는 당신 자신의 그림자처럼 당신을 따라올 것이다. 누구라도 어떤 부모, 어떤 친지, 어떤 친구라도 정화된 마음보다 더 당신을 도와줄 수는 없다. 잘 훈련된 마음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책 《위빠사나 명상_헤네포라 구나라타나 스님》은 명상의 목적을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명상이 우리를 감정의 굴레에 얽매어두는 것들, 즉 탐욕과 중오와 질투 같은 일종의 심리적 불안 요소들의 사고 작용을 청소해줌으로써 마음을 평정과 자각의 상태, 집중과 통찰의 상태로 이끌어 준다는 것입니다. 또, 명상을 용광로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책을 내용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열렬한 교육 신봉자들이다. 우리는 지식이 인간을 문명화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명은 그 사람의 표면만을 닦아낼 뿐이다. 고결하고 교양 있는 신사들에게 전쟁이나 경제 몰락 같은 스트레스를 겪게 하면 어떻게 될까. 징벌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 결과가 겁나서 법을 지키는 것과, 남의 것을 훔치게 만드는 탐욕과 남을 죽이게 하는 증오심을 없앴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냇물에 돌을 던져보라. 그 돌의 표면은 흐르는 물에 다듬어질지 몰라도 내면은 변하지 않고 그래로 남아 있다. 같은 돌을 가져다가 쩔쩔 끓는 용광로의 화염 속에 던져 보아라. 돌 전체가 안팎으로 완전히 변하고 만다. 완전히 녹아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문명은 인간의 외면만을 바꾸지만 명상은 인간의 내면을 완전히 용해한다. 


  흔히들 명상을 대스승이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명상이 이해를 통해 서서히 작용하는 정화의 불 도가니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깊어질수록 당신은 더 유연해지고 더 관대해지며, 자비심도 더 커진다. 당신은 완벽한 부모, 다시 말해 이상적인 스승 같아진다. 당신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잊어버리 수 있다. 당신은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그들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자신을 이해했기에 남들도 이해한다. 당신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고 자신의 인간적 약점과 미망들을 보았다. 당신은 자신의 인간성을 보았고 그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에게 자비로워지는 법을 배우면 남들에게는 저절로 자비로워진다. 도를 깨친 명상가는 삶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얻었기에, 깊고 무비판적인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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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은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것과 흡사하다. 숲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려면 먼저 나무들을 베고 그루터기를 뽑아내야 하고, 땅을 갈고 거름을 주어 비옥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씨를 뿌려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닦으려면 먼저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불안 요소들을 베어내고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 다시 자라지 않게 한 다음 거름을 주어야 한다. 마음이라는 토양에 기운을 불어넣고 다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씨를 뿌리면 믿음과 도덕성과 알아라침과 지혜라는 곡물들을 수확할 수 있다.


  명상의 목적은 개인의 변신이다. 명상 체험 속으로 들어갈 때의 당신과 그 체험에서 나올 때의 당신은 같지 않다. 그만큼 명상은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깊이 자각하게 만드는 민감화를 통해 기질을 바꾼다. 오만이 사라지고 적대감도 말라붙는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차분해진다. 당신의 삶 역시 부드럽게 풀려나간다. 따라서 명상 수행을 제대로 하면 일상의 부침에 잘 대처할 수 있다. 또 명상은 긴장과 두려움, 걱정, 끊임없는 불안감을 줄여주고 격렬한 감정도 누그러지게 한다. 상황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당신의 생활도 투쟁이 아닌 활주가 된다. 이 모두가 이해를 토앻서 일어난다. 


  명상은 당신의 집중력과 사고력을 예리하게 만들어주기에, 당신의 잠재의식적 동기와 메커니즘도 차츰차츰 분명해진다. 직관도 예리해져서 당신 사고와 정확성도 높아지고, 사물을 편견과 미망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직지(direct knowledge)에 서서히 이르게 된다. 이만하면 왜 굳이 명상을 해야 하는지 충분한 이유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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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세보placebo와 노세보nocebo 현상은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현상으로 플라세보란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게요'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미국 예일대학 연구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밀가루를 캡슐에 넣어서 진통제처럼 보이게 만든 뒤 두통을 호소하는 여자 환자들에게 이 캡슐을 먹였습니다. 그러자 40%의 여성들에게서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한편, 아직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진통제라고 말하고 증류수를 주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60% 사람에게서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밀가루와 맹물의 진통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마음의 작용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진통제라고 믿으면 몸에서 진통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을 '플라세보 효과'라고 합니다. 마음이 뇌를 움직여서 엔도르핀이라는 강력한 진통제를 분비시킨 것입니다.


  반면 노세보 효과는 플라세보와는 반대로 부정적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의사가 불면증 환자에게 수면제를 주면서 "이 약을 먹고 오히려 밤새 잠을 못 주무셨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라고 부작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도 잠을 못 잘 거야'라고 생각한 환자는 수면제를 먹고도 밤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마음이 'no!'라고 했기 때문에 뇌도 따라서 'no!'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노세보 효과입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약의 부작용을 설명해 주기를 꺼리는 이유도 노세보 효과를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마음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영국에는 'What matters most is how you see yourself'라는 말도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는 뜻으로 행복과 불행이 마음의 평가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마음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중요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바로 명상을 생활화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고, 떠오르는 생각과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간단한 행위만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만 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누리는 평화를 나도 누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걸 얻을 수 있는지 알려 주세요"라는 물음에 에크하르트 툴레는 말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 비법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책망할 때가 있습니다. 부끄러워 할 때도 있고, 불쾌해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스스로 일어날 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나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나가 아닌 둘이란 말인가?

  내가 나 지신을 견딜 수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둘이어야 마땅합니다. 평소의 내가 있어야 하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인 것일까요?





명상 22일차, 법구경, 위빠사나 명상,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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