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명상 10일차, <명상의 목적과 마음의 고요>



잭 콘필드의 《어려울 때 힘이 되는 8가지 명상》 중에서...

  모든 사람에게 삶은 변화와 불확심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상실과 고통, 고난이 어김없이 일어난다. 우리는 모두 이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방랑하는 유목민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우리 스스로의 방법이 필요하다.


  살면서 고난과 마주쳤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외적 변화가 아니라 마음상태인 경우가 많다. 슬픔, 불안, 두려움, 상실, 그 밖의 거친 감정들과 시련과 고통에 관한 사연을 풀어내는 법을 배우기 전 까지는 그런 것들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 받고 병들게 될 수도 있다. 


  처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렇지만 곧 문제가 우리를 따라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배신과 모욕, 상처와 질병,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최선의 길은 상처받은 내면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상처받고 힘겨운 내면에 두려워 말고 주의를 기울이면, 그 상황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나 삶을 바꿀 놀라운 선물을 주기도 한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이러한 치유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을 항상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완전하지는 않지만 더 좋아진다고 약속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돌아가는 상황을 좀 더 충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현명하고 연민 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치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어떤 치유 방법이 적합할지는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8가지 명상》 역자 후기에서...

  우리는 힘겨운 시기를 주의 깊게 헤쳐 나갈 필요가 있단 온 세상은 우리가 수행하는 사원이며, 무엇이든 사랑과 존엄으로 돌봐야 하는 곳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은 우리 모두에게 권고했다. "어떤 사람이 생계를 위해 거리를 청소한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이,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이,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듯이 해야 한다."


  보도블록 틈새에서 솟아나는 잡초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던 폭풍우 끝에서, 창가에 새롭게 자리 잡은 화분에서, 예상치 못한 변혁에서, 매일 아침 햇살에서 세상은 끊임없는 새로운 탄생을 보여준다. 이처럼 막을 수 없는 재생의 정신이 우리 안에 있다. 믿으라. 이들이 우리와 우리의 삶 전체에 흐르고 있음을 배우라.



명상 10일차, <명상의 목적과 마음의 고요>



잭 콘필드의 《어려울 때 힘이 되는 8가지 명상》 추천사_존 카밧진

  진리(Dharma)의 길로 들어서는 입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입구가 언제 어디서 우리 앞에 나타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챙김 명상에서 처음 느꼈던 명쾌함과 감사함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진리가 가진 치유의 힘과 변화 가능성을 접하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는 않지만,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온전하게 만나게 되고 삶과 마음이 진정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위대하고 숙달된 스승과 함께하더라도 가장 깊고 가장 근본적인 '연결'은 스승이 아닌, 충만하게 채워진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그 충만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T.S.Eliot)은 충만함이란 '찾을 수 없어서 알려지지 않은' 것, 그러나 마침내, 희망적으로 '파도와 파도, 그 사이의 고요함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희망적인 소리'라고 말한다. 설사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부인한다 하더라도 그런 고요함, 그런 인식, 그런 명료함, 자신의 아름다움,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함께하는 길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에서...


제자의 질문 : 마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마음이란 진아 안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힘이다. 그것은 모든 생각을 일으킨다.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이 바로 마음의 본질이다. 또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현상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잘 때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따라서 현상계도 없다. 그러나 깨어 있을때나 꿈꿀 때에는 생각이 있으며 따라서 현상계도 있다. 거미가 몸 밖으로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거둘어들이듯이 마음도 바깥으로 현상계를 투사했다가 다시 거두어들인다. 마음이 진아밖으로 나올 때 현상계가 나타난다. 따라서 현상계가 나타날 때 진아는 나타나지 않으며 진아가 나타날 때 현상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마음은 진아를 떠나서 사라져 버린다. 진아가 바르 아트만Atman이다. 마음은 항상 무엇엔가 의존하고 있으며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마음이다.



스리 라마나, 그리고 현대인에게 주는 그의 메시지 _ 칼 쿠스타프 융

  진아(Self, 진정한 나)를 신과 동일시하는 것이 서구인에게는 충격일 것이다. 이는 스리 라마나가 말하듯이 전적으로 동양적인 깨달음이다. 심리학으로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심리학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사실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도인들에게는 영적의 근원으로서의 진아가 신과 다르지 않으며 진아 안에 안주한 사람은 신 안에 안주한 것이고 나아가서 스스로 신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스리 라마나도 이 점에 대해서는 매우 분명하다.


  동양적인 수행의 목표는 서양 신비주의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동양에서는 초첨이 <나>로부터 진아로 옮겨가듯 서양에서는 인간에게서 신으로 옮겨간다. 이는 <나>가 진아 안에서 ,그리고 인간이 신 안에서 사라짐을 의미한다. 


  <나>와 진아라는 두 요인이 양적으로 변화되는 관계는 체험의 영역에서 드러나는데 동양인들은 내성적인 의식을 가지고 서양인들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깊은 영역까지 탐구해왔다. 따라서 우리의 철학과는 판이한 동양의 철학이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선물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체험을 얻어야만 한다. 스리 라마나의 언어들은 인도 정신이 내면의 진아에 대한 명상을 통해 수천 년 동안 축적해 온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요약하고 있다. 또한 그의 삶과 그가 했던 일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내면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 인도인들이 해 왔던 심층적인 노력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스리 라마나의 삶과 가르침은 인도인에게 뿐만 아니라 서구인에게도 중요하다. 그것들은 인류에게 지대한 도움을 주는 기록일 뿐 아니라 무의식의 혼돈과 자기 조절의 결핍 속에서 스스로를 상실해 가는 인간성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진아'라, 너무 앞서 나갔고, 너무 깊이 들어갔다. 물론, 언젠가는 추구해야 할 궁극의 삶이자 마지막 목표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전에 '나의 마음'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에 대해서 하나 부터 열 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내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혀, 현재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지각, 의식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명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생각덩어리'라고 했을 때, 이런 생각덩어리들이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들이 모여 삶이 된다. 현재 내 삶은 지난 과거 생각덩어리들이 만든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히는 능력을 기르고, 일상에 점목시킬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생각이나 불안한 정서를 걸러내는 힘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런 불완전한 마음을 없애 버리거나 무의식 깊은 곳에 뭍어둔 채, 진정 필요하고 이로운 마음만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명상 10일차, <명상의 목적과 마음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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