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프레임,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_최인철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타인의 힘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나의 힘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둔감하다. 타인의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정작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저 사람은 저래'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지혜와 자기 성찰의 완성은 타인에게 미치는 나의 영향력을 직시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면, 더 나은 나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핑크대왕 퍼시'다

퍼시는 핑크색을 좋아하여 자신의 옷을 포함한 모든 소유물을 핑크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매일 먹는 음식도 핑크 일색이었다. 그러나 핑크대왕은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성 밖에 핑크가 아닌 다른 색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끝에 핑크대왕은 백성들의 모든 소유물을 핑크로 바꾸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왕의 일반적인 지시에 일부는 반발했지만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옷과 그릇, 가구 등을 모두 핑크색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핑크대왕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세상에는 아직도 핑크색이 아닌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나라의 모든 나무와 풀, 동물까지도 핑크색으로 염색하도록 명령했다. 대규모 군대가 동원되어 산과 들로 다니면서 모든 사물을 핑크색으로 염색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심지어 동물들은 갓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핑크색으로 바꾸었다.

  드디어 세상 모든 것이 핑크로 변한 듯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곳, 핑크로 바꾸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하늘이었다.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라도 하늘을 핑크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며칠을 전전긍긍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자, 핑크대왕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스승에게 방법을 찾아내도록 명령했다. 밤낮으로 고심하던 스승은 마침내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꿀 묘책을 찾아내고는 무릅을 쳤다.

  핑크대왕 앞에 나아간 스승은 "이미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꿔놓았으니 준비한 안경을 끼고 하늘을 보라"고 했다. 핑크대왕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스승의 말에 따라 안경을 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구름과 하늘이 온통 핑크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승이 마술이라도 부려서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꿔놓은 것일까? 아니다. 스승이 한 일이라곤 핑크빛 렌즈를 끼운 안경을 만든 것뿐이었다. 하늘을 핑크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대신 하늘을 핑크색으로 보이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핑크대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날 이후 매일  안경을 끼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백성들은 더 이상 핑크색 옷을 입지 않아도 되었고, 동물들도 핑크색으로 염색할 필요가 없었다. 핑크 안경을 낀 대왕의 눈에는 세상은 언제나 핑크였다. 우리도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핑크대왕 퍼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프레임에 대한 철학적 정의

"사람의 지각과 생각은 항상 어떤 맥락, 어떤 관점 혹은 일련의 평가 기준이나 가정하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맥락, 관점 평가 기준, 가정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지각과 생각은'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을 뜻한다. 따라서 위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정신 활동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과 가정하에서 일어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어떤 관점과 기준 그리고 일련의 가정을 염두에 두고 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프레임의 역할

"프레임은 우리가 지각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선택적으로 제약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각과 생각의 결과를 결정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결국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모든 정신 과정을 프레임이 '선택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처음부터 전혀 보지 못하는 대상과, 고려조차 하지 못하는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게 하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처음부터 보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보게 하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처음부터 찾지 못한다.  



  어떤 것에 대하여 '마지막'이라는 가정을 갖게 되면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이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가수 조용필은 전성기 시절에 여러 명이 츨연하는 공연에서 항상 맨 마지막에 등장하곤 했다. 사장님도 늘 마지막에 한 말씀 하신다. '마지막'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각별하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정의 내리면 그 프레임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평가를 극적으로 바꿔놓는다.


  노인의 행복도가 젊은이의 행복도보다 결코 낮지 않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인들이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존재들이다. 젊은이들은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살면, 매 순간순간이 중요해진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일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여기, 지금'이라는 가르침은 청소년들에게는 암기를 요하는 지식이지만, 노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호흡니다. 노인들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사람들과는 굳이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 미움받을 용기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하지 않다. '이 나이에 내가 뭣하로'라는 삶의 원칙이 생겨나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하는 선택들을 하게 된다. 반면에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미래를 위해서 고통스러운 현재를 참으려 하고, 자신을 언짢게 하는 사람도 견뎌내려고 한다. 노인의 행복도가 젊은이와 비교해서 결코 낫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시간에 대한 프레임이 그들의 행복을 극대화시켜주기 때문이다. 



●프레임은 질문이다

  자기 삶에 대한 평가가 시시하다면 내가 시시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답이 안 나오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질문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무언가 더 나은 답을 찾고 싶은 사람은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질문부터 점검해야 한다.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이 말은 바버가 세상에 던지고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바버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성공한 사람인지 힘 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가 현재 배우고 있는 사람인지 배우기를 멈춘 사람인지가 궁금하다. "저 사람은 돈이 많을까?"라는 질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질문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던지는 질문도 아름답다.







프레임은 은유다

개인이나 조직이 어떤 은유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들의 프레임을 알 수 있다. 김난도 교수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는 하루를 인생 시계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인생을 80이라고 보면 마흔 살은 12시에 해당하고, 스무 살은 겨우 아침 6시에 해당한다. 스무 살에 좌절 하고 있는 청춘을 향해 김난도 교수는 매섭게 야단친다. "아침 6시에 오늘 하루가 절망이라고 좌절하는 그대는 제정신인가?"라고,

   어떤 기업은 회사를 '가족'에 비유한다. 어떤 기업은 회사를 '실험실'로 비유한다. 가족으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관계가 중시되고, 실험실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모험과 창의성이 중시 된다. 가족으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위계질서와 조화가 핵심 가치가 되지만, 실험실로 비유되는 회사에서는 위계질서보다 평등과 독럽적 사고가 우선적인 가치가 된다.

   개인, 가정, 조직, 국가에는 나름의 은유가 작동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은유는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은유 속에 살고 있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프레임을 바꾸고 싶다면 바로 그런 은유를 찾아내서 바꾸어야 한다.



TV가 프레임이다

TV는 현대인의 멘탈 시뮬레이션을 도와준다. TV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삶을 경험한다. 자기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경험하고, 자기가 다녀보지 못한 직장을 경험한다. TV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접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TV는 시뮬레이션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보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TV에 나오는 이성들은 대개 미남미녀다. TV에서 등장하는 미남미녀를 보고 난 후에 우리의 파트너를 보면 어떤가?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일수록 자기 파트너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는 점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TV로 인해 생긴 프레임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인다.

첫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세상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사람들을 덜 신뢰한다.

셋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대해 음모론적인 시각을 갖기 쉽다.

넷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강하다.





   최인철 교수가 언급한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의 특징이 얼마만큼 사실에 근거한 조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TV를 보지 않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이든 아니든, 안 보길 잘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특징들이다. 하루 24시간이 그렇게 길었던가? 공부하고, 운동하고, 가족과 대화 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바보상자를 보면서 키득거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유튜브 시청을 최대한 자제하고, 시청 시간을 줄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뉴스도 되도록 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직 거짓 뉴스를 판단할 만한 분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온 몸으로 맞서야 하는데, 아직 그럴만한 용기와 그릇을 갖추지 못했다.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 모든 관념은 유동적이어야 한다. 고정되고 편파적인 관념에서 벗어날 때만이 비로소 '지혜'를 얻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관념, 관습,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떳떳한 사고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다.


나는 세상을 선한자와 악한자로 나눈다.

나는 세상을 따듯한 마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눈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나는 세상을 책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

전자는 내가 되고 싶은 이상형이고, 감히 성인이라 칭할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이 딱 한 명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문재인대통령 일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노무현대통령에 빙의 된 어떤 사람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내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나도 프레임에 갇혀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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