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상처 받지 않는 영혼_마이클 A. 싱어》를 읽으면서······ .




나는 외부 세계의 어떤 것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외부와 내부의 이 대상들은 왔다가 지나가고 나는 그것들을 경험한다. 나는 생각도 아니다. 그것은 잠잠할 수도, 시끄러울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슬플 수도 있다. 생각은 내가 인식하는 또 다른 대상일 뿐이다. 그럼 난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무엇일까? 이 모든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경험을 하고 있는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의문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본다. 그러면 경험들을 지나 보낸 뒤에 남아 있는 자를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경험을 경험하는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나는 마침내 경험자인 내가 어떤 특별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 내면의 어떤 지점에 도달한다. 그 속성이란 순수한 인식, 의식함, 존재한다는 어떤 직관적 느낌이다. 나는, 내가 거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안다. 원한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내가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존재한다. 


이것을 조금 더 경험적으로 알기 위해 의식적인 실험을 한번 해보자. 방안이나 창문 밖을 한번 흘끗 바라봄으로써 눈앞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자세히 볼 수 있는지 보라. 가깝든 말든 나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애쓰지 않고 인식할 수 있다. 나는 머리나 눈을 돌리지 않고도 보이는 것들을 즉석에서 자세히 인식한다. 모든 색깔들과 다채로운 빛과 목가구의 결과 건물의 생김새와 나무껍질과 잎을 바라본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필요 없이 단숨에 인식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본다. 이제 내가 보는 것을 생각으로써 낱낱이 떼어내어 이름 붙이고 자세히 묘사해 본다. 그냥 바라보는 의식의 순간 포착에 비하면 마음의 소리가 그 모든 사항을 나에게 묘사하는 데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가? 생각을 만들어내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하면 나의 의식은 애쓰지 않고도 보이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온전히 인식한다.







의식이란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단어이다. 의식보다 높거나 깊은 것은 없다. 의식은 순수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인식한다는 건 또 뭔가? 내가 여러 명의 사람들과 피아노가 있는 방에 있다고 하자. 이제 나의 세계에 피아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하자. 그것 때문에 큰 문제가 있을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난 피아노에 관심이 없다.' 좋다 그러면 방안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저 그것의 스위치를 꺼버려라. 이젠 어떤가?


내 의식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어떨까? 사실 그건 아주 간단하다. 나는 거기에 없을 것이다. '나'라는 느낌이 없을 것이다. '어, 내가 여기 있었는데 이젠 없어.' 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존재의 인식이 없다. 존재의 인식, 곧 의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대상은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대상을 인식한 자가 없다면 그것이 존재하는지 않는지를 따진다는 것은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 된다. 내 앞에 아무리 많은 것들이 있어도 의식의 스위치를 끄면 아무것도 없게 된다. 하지만 의식이 있으면 눈앞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없음을 온전히 인식한다. 사실이지,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매우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보는 자이다. 나는 이 안 어딘가에서, 내 앞을 지나가는 사건과 생각과 감정들을 내다보고 인식한다.'


아주 깊숙히 들어가면, 거기가 내가 사는 곳이다. 나는 의식의 자리에서 살고 있다. 거기에 진정한 영적 존재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살고 있다. 우리의 눈이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 보이는 모든 것을 내다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나도 내면의 깊은 자리에 그윽이 앉아서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 모든 생각과 감정과 외부의 형상들을 내다보고 있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대상들이 내 앞에 있다. 생각은 가장 가까이 안쪽에 있고 감정은 그보다 약간 떨어져 있고 형상들은 저 밖에 멀리 있다. 그 모든 것들의 배후에 내가 있다. 깊이 깊이 들어가다가, 바로 거기가 내가 늘 있었던 그곳임을 깨닫는다. 나는 삶의 각 단계마다 다른 생각과 감정과 대상들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아 왔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식이었다.


이제 나는 의식의 중심에 있다. 나는 만물의 배후에서 그저 지켜보고 있다. 여기가 나의 진정한 본향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을 없애 버려도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 중심 자리가 '참나'의 자리이다. 나는 그 자리로부터 감각을 통해 생각과 감정과 온 세상이 들어오는 것을 인식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안다. 그것이 불교의 불성, 힌두교의 아트만,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혼의 자리이다. 그 깊은 내면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위대한 신비가 시작된다.



《상처 받지 않는 영혼_마이클 A. 싱어》를 읽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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