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 책을 읽다가 어처구니 없는(어처구니? 단어 선택이 맞는건가? 어쨌든) 문장을 발견했다. 놀랍기도 했지만, '실소를 머금은 어처구니 없는 상태를 맞았다' 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지난 포스팅에서 '인생은 보너스고 덤이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 말을 B.C 100년 ~ BC 44년에 살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 이름은 시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저', 고대 로마의 정치가, 장군)가 먼저 했단다. 와~ 글 쓰면서도 '이 표현 괜찮다' 싶었는데 2,100여 년전에 이미 사용된 적이 있는 말이라고? 허~허~ 헛웃음만 나온다.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보자.

☞ 지난 글 : 김찌의 주장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죽을 수조차 없다. 이미 죽어 있으므로, 살아가는 일은 죽어가는 일이므로, 그리하여 에픽테토스Epiktetos(로마 시대 철학자)는 말했다. 우리는 시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불쌍한 영혼들에 불과하다고, 부하가 이만 죽으러 가야겠다고 하자.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아직 살아 있다고 여기는구나." 삶이 곧 죽음이라면, 그리하여 이미 죽어 있다면, 여생은 그저 덤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적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이

구멍 뚫린 그릇에,

어떻게 해도 채워질 수 없는 곳에, 

물을 길어 붓네.

-루크레티우스

 

 

단풍잎이 떨어져 물에 흐르지 않았다면 

타츠타 강물의 가을을

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사카노우에노 고레노리

 


 

 

살며서 찾아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생은 물론 삶 자체가 덤이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나 자신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 세상 모든 굴레에 "잠시 비켜 있을래?" 하고, 떨어질 것을 요구하며 완벽한 자유를 느끼는 것.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는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기쁜 일을 하며 사는 것 보다는 기뻐지는 것. 

무엇보다 주인공으로 사는 것

 

 

-거북이 '주인공'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냐~

이젠 좋은 날이 올꺼야

이미 좋은 날

 

 

 

☞빛알이의 탄생!

빛알이도, 여러분도 그리고 저도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며, 기쁘게 살아갑시다~~

 

 

PS : 거북이의 '주인공 뮤직비디오'가 저작권 문제로 재생이 안되는군요. 참 신나고 좋은 노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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