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타자의 어리석음'인가?'나의 오만방자'함인가?아니면 '나와 다름인가.'





《삶을 위한 철학수업.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_이진경》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단지 한 줌의 용기다. 옳다고 주어지는 것이 정말 옳은지 다시 생각하고, 자신이 정말 긍정할 수 있는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은 이 한 줌의 용기로 시작한다. 그것과 더불어, 주어지는 것에 대한 순응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기존의 가치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부터 슬쩍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 작은 벗어남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한 줌의 용기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세한 이탈이 제공하는  새로운 대기속에서 어떤 기쁨을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면, 그 가음은 저욱 쉬워진다. 한 줌의 용기를 다시금 자극하고 촉발하며 증폭시키는 체증적인 되먹임이 내 손을 잡아당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용기와 작은 기쁨이 되먹임 되며 증가하는 이 순환 속에서 우리의 삶은 자유를 향해 체증적인 고향의 선을 그리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주장한 '말과 생각'이 정말 옳았는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금의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타자에게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으로 보일 수 있다. 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피드백을 들 수 있는데, 현재 직장에서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소통이 안되는 것은 너무 힘 빠지고 답답한 상황이다. 



'타자의 어리석음'인가?'나의 오만방자'함인가?아니면 '나와 다름인가.'



《삶을 위한 철학수업.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_이진경》

사건이란 어떤 일로 인해 발생한 곡절, 애초의 궤적에서 벗어난 이탈에 대한 긍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고가 많은 인생은 그 사고의 수와 크기만큼 안타깝고 불행하지만, 사건이 많은 삶은 그 사건의 수와 크기만큼 풍요롭고 행복하다. 누구도 뜻밖에 닥쳐오는 일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사고로 부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불행을 뜻하겠지만, 그것을 사건으로 긍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행복을 뜻하는 게 될 것이다.


일생일대의 사건, 그것은 뜻밖의 순간에 닥쳐와, 누군가의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내게 다가온 '사건'에 대항하여  삶을 애초의 방향으로 되돌려 놓으려 할 때, 그 이전과 이후를 크게 다르지 않게 수습하려 하고 그로 인해 피할 수 없는 행로의 차이를 최소화하려 할 때, 그것은 사건이 아닌 '사고'가 된다. 


사고란, 그것이 실제로 나를 애초에 바라던 것과 다른 곳으로 밀고 가더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어떤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두 지점 간 간극의 폭은 그가 느끼는 불행의 크기를 뜻한다. 사고란 말에 부정적인 색채가 담겨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그게 사건이 되는 것은 그로 인한 변화를 나의 새로운 삶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함으로써다. 그것을 받아들인다 함은, 피할 수 없이 이미 내게 밀고 들어온 그것이 내 삶 안에 자리잡았음을 받아들임이며, 그것을 긍정한다 함은 그것으로 인한 변화를 새로운 삶의 기회로, 또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긍정함이다.



내 일생의 가장 큰 사건(사고라고도 할 수 있는)은 지난 2019년 여름에 발생했다. 그 날 이후 내 인생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전히 진행중이고,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지만, 지금부터는 그 일을 사건으로 받아들여 내 삶에 정착했음을 인정하고, 그 사건 안에서 긍정적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일은 내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후회만 하며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로 정신과 에너지를 낭비하기엔 내 인생이 결코 가볍지 않다. 



'타자의 어리석음'인가?'나의 오만방자'함인가?아니면 '나와 다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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