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눈 내리는 휴일 오후 아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난 해 12월 31일에 신청했던 희망 도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상당이 많았다. 지난번 대여한 책을 반납하면서 "희망 도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고 말하며 회원증인 '책이음카드'를 제시한 후 아이는 아이대로 책을 고르기 위해 이동했고, 나는 2층으로 향했다. 오늘 대여할 책이 2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와 희망 도서 세 권, 아이가 고른 책 두 권, 합쳐서 여섯 권을 대출 받아 왔다. 아래 책중 김욱님의 《취미로 직업을 삼다》를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대단하다'였다. 여든 다섯이라는 연세에 현역 번역가와 작가로 활동하시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데, 앞으로 십 년을 더 하시겠단다. 나아가 백다섯 살까지 살고 싶다고 당당히 말씀하시는 부분에서는 박수 쳐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이 분의 필력이었다. 젊은 편집자들이 저자의 원고처럼 깨끗한 글을 거의 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는데, 그럴만도 하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_지은이_김욱.책읽는고양이




 취미로 직업을 삼다_지은이_김욱.책읽는고양이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햇다. 서울역 뒤편에서 냉면집을 하던 아버지를 도운 날이면 손에 쥐어진 동전을 갖고 동대문 헌책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문학동인회를 만들었고, 대학에서도 국문학과를 전공했다.

 문학지 신인 작품 모집에 응모하여 1차 예심을 합격하고 2차 심사만 남겨둔 어느 날, 6.25 전쟁이 터졌다. 주변에서 무슨 일을 겪든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좋아하는 책에 빠질 수 있었던 시절은 가고, 사회적 흐름에 따라 원치 않은 방향으로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직업으로서 신문 기자가 되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30여 년간 일했다. 은퇴 후 다시금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자 전원 생활을 시작했으나 잘못 선 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쫄딱 망해 남의 집 묘막살이를 하며 시제를 지내주면서 입에 풀칠을 한 세월도 있다.

 절박함 속에서 남은 삶을 지켜내리라 결심하고, 평생의 취미였던 독서를 밑천삼아 번역에 매진하여 200여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누군가는 현재의 삶을 기적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운명을 되돌아보고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답한다.



몸은 마음의 지배를 받고마음은 몸의 상태를 따라간다사는 곳먹는 것입는 것만나는 사람들직업기술재능관심종교가 각 사람의 수명과 건강에 직결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내 안의 야누스는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표정이 있을까. 내가 보지 못한 나의 얼굴이 아직 남아 있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어둠을 컴컴하다는 것 뿐이다. 슬퍼지면 눈물이 난다는 것 뿐이다. 그 외에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밝음은 환하기만 한 게 아니다. 태양의 흑점이 터진 듯 강렬하게 눈부신 날이 있는가 하면, 미명에 동틀 때 내 몸을 감싸주는 따뜻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날이 끝나가는 석양빛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때도 있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박장대소가 있고, 미소가 있고, 너무 웃다가 울어버릴 때도 있다. 나쁜 감정은 단순하지만 기쁘고 행복한 감정은 복잡 미묘하다. 때로는 내 것을 양보해서 뿌듯하고, 확신했던 성공이 뒤로 미뤄져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젊은 세포일수록, 아니 어린 세포일수록 병균과 세균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어린 세포들은 주위 환경에 너무나 쉽게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한다. 인간 생명의 근원은 면역력이다. 이 면역력은 젊고 싱싱한 세포끼리 조합되었을 때는 기능적으로 형편없다. 병균과 세균의 입맛을 자극하는 싱싱한 먹잇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이 감춰 놓은 진실이다. 그리고 노화라는 숙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깨달아야 될 현실이다.현실 속 우리들은 늙을수록 강해지고 늙을수록 병들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는 늙어갈수록 인간다운 기능은 완전체에 가까워진다. 정신과 이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육체에 대한 과학적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무 살 청년과 환갑을 맞은 장년의 능력을 비교하자면, 청년들 눈치를 좀 봐야겠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환갑 먹은 장년이 압승한다. 기운은 스무 살 청년보다 부족할 지 모른다. 창의력과 모험 정신, 도전 의식 등에서도 스무 살 청년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40년이나 세상을 경험하고, 대인관계를 유지해오고, 지식을 습득하고, 주도적으로 사안을 판별하여 분류한 정서적, 지적 능력은 스무 살 먹은 애송이와는 비교가 안된다. 그러나 세상을 스무 살 애송이가 마흔 살이 되는 무렵에는 안정적으로 사회의 중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완성형 인간을 목전에 둔 환갑의 노인을 세상 밖으로 나가라고 떠민다.





 

 우리는 젊은 사람만큼 건강하고, 강단있고,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똑똑하지만, 그들의 40년을 위해 우리의 20년을 고독과 어둠 속으로 내모는 구도의 길을 떠나간다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장노년층 세대가 1년에 1700만 원씩 써가면서 몸짱을 바라는 까닭은 그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젊은이 못잖은 근육을 뽐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약물 부작용까지 감수하는 이유는 감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나아가고 싶은, 발전하고 싶은 열망이 감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했던 과거도 있고, 잘했던 일들도 있다. 그것들이 합쳐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다 끝났다고 말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막다른 골목은 절대로 나쁜 의미가 아니다. 여기보다 재미난 놀이터는 없다. 길이 끊긴 벽 앞에서 어떻게 해야 이 벽이 부서질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즐거울 때가 없다. 나를 가로막는 벽이 없고 사방이 뻥 뚫려 있는 것이야말로 곤란하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갈피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나이 먹고도 아직 아파하는 까닭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라는 세상의 '정'에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방법을 몰라서 몸에 익은 습관대로 타인에게 내가 당한 아픔을 앙갚음 한다. 서로에게 상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이제부터는 상처를 나에게만 입혀야 한다. 누가 나를 아프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남보다 한 발 앞서 행복해지기를 꿈꾸기 전에 남보다 한 발 앞서 상처에 도달하기를 꿈꾼다.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가지기를 계획하기 전에 남보다 하나 더 실패하기를 계획한다. 이런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세상이 이런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없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_지은이_김욱.책읽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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