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단어가 인격이다
국내도서
저자 : 배상복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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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 <단어가 인격이다 - 배상복 지음>





권기옥(최초의 여성 비행사)과 같이 남성들이 주로 하던 일에 여성이 참여하는 경우 '여류'라는 단어를 붙이기 일쑤였다. '여류 시인 허난설현', '여류 화가 신사임당', '여류 명창 진채선', '여류작가 김영순' 등에게도 '여류'라는 말을 사용했다. '여류'라는 표현은 요즘도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많이 쓰인다. 여류 소설가, 여류 문인, 여류 문학, 여류 바둑기사, 여류 피아니스트 등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물론, 전후 사정이나 맥락에 따라 '여류'라는 단어가 차별적 표현으로 쓰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류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류'라는 말을 붙인다면 무의식적으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여성이 하는 일이 따로 있으며 여성은 힘들고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이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구태어 여성이라는 사실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여류'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독서평 <단어가 인격이다 - 배상복 지음>



공감한다. '여자는 여성이고, '남자만 인간'이 아니지 않나. 여자도, 남자도 똑같은 인간이다. 시인, 화가, 명창, 작가, 정치가 앞에 '남녀' 성을 나타낼 필요는 없다. '작가'면 작가고, '비행사'면 비행사지 성별을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굳이 부연해야겠다면 '인간 시인', '인간 화가', '인간 명창'으로 하자.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가 '인간'임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게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인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시인', '화가', '바둑 기사', '피아니스트'라고 하자.


총각은 못 나가는 처녀출전

주로 스포츠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처녀출전'이라는 것이 있다. 처녀출전이 있으면 당연히 총각출전도 있어야 한다. 스포츠는 처녀들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각들도 스포츠를 한다. 그러나 참 희한한 게 총각출전이란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웃자고 한 말이다. _이하 생략


피식!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재밌는 문장이다. 모두 아시다시피 '처녀 출전'이라 함은 '처음' 출전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성년 여자를 뜻한다. 비슷한 뜻으로 성적 경험이 없는 여자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처녀 출전=성적 경험이 없는 여자 출전'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인가? "3번 레인에 '성 경험이 전무한 김OO양' 출전했습니다."라고 말이다. 또,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예선에서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선수는 놀랍게도 '성 경험이 없는 이OO군'입니다."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저자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처녀'란 말이 '처음' 또는 '첫'이라는 뜻으로 '출전'이나 '우승'이란 단어와 결합해 처녀출전.처녀우승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처녀'와 결합한 말로는 처녀작.처녀비행.처녀항해 등 많다. 이런 조어가 만들어진 것은 영어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_중략

물론 사전적으로 따지면 '처녀'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일이나 행동을 처음으로 함', '아무도 손대지 아니하고 그대로임'이라는 의미가 있다. 언어는 관습이고 습관에서 나타나는 의사전달이므로 '처녀'를 '처음'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영어뿐 아니라 한자어권에서 모두 쓰이는 단어여서 굳이 성적일 표현이라 볼 수 없다는 이도 있다.


주장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언어가 관습과 습관에서 나타나는 의사전달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특히 여성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단어라면 사용을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대로 '처음 출천', '첫 우승', '최초 비행' 등처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인 '처음, 첫, 최초를 사용해도 의미를 전달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역시, 관습이나 좋지 않은 습관, 비정상적 고정관념이 문제다. 



독서평 <단어가 인격이다 - 배상복 지음>



남자만 다니는 고등학교는 OO 고등학교, 여자만 다니는 고등학교는 OO 여자고등학교라고 불린다. 여자만 다닌다고 해서 학교명에 '여자'를 넣는 것이라면, 남자만 다니는 고등학교(인천남고등학교, 부산남고등학교 등은 '남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쪽'을 뜻한다)에도 학교명에 '남자'라는 단어를 사용(교명에 '여자'라는 용어를 꼭 써야 한다면)하자. 괜히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아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였으니 부끄러워야 마땅할 것이다. 교명에 '여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남자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결과로써 절대 사라져야 할 관습의 한 행태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목동 고등학교(서울 양천구), 인천 논현 고등학교(인천시 남동구), 인천 고잔 고등학교(인천시 남동구), 삼정 고등학교(부산시 북구) 등과 같은 학교에서는 교명에서 '여자'를 뺌으로써 굳이 여자만 다니는 학교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한계를 넘어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리더 육성을 목표로 하고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밖에서 일하는 안사람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유교적 윤리가 강조되는 사회였다. 유교적 윤리에서 나온 말 가운데 '삼종지도'라는 것이 있다. 여성은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시 여성의 지위는 지금보다 매우 낮았다. _중략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정 안에서 만큼은 여성도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가르치는 일, 그리고 살림살이를 꾸리는 일은 모두 여성의 몫이었다. 제사를 준비하는 일도 여성이 도맡아 했다. 오히려 남편은 집안일에 간섭할 수 없었고 이러한 부분에서는 여성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이처럼 여성의 역할이 집안에만 머무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사람.안주인.인식구.집사람과 같은 용어가 익숙하게 자리 잡게 됐다. 요즘도 자신의 부인을 지칭할 때 이러한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아내를 소개할 때 "제 안사람입니다.", "제 집사람입니다." 하는 식으로 안사람.집사람 등의 말을 쓴다. _중략

남편과 아내가 동시에 사회생활을 하기 일쑤고 가정일도 요즘은 나누어 함께 한다. 이러한 시기에 부인을 안사람이나 집사람으로 부르는 것을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용어가 자기 아내를 남들에게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기는 하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부인을 낮추어 말할 때 이렇게 부르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과거 여성들은 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다. 이러한 관습이 자연스럽게 현대까지 이어져서 남들 앞에서 아내를 소개할 때 "제 집사람", "제 안사람"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용어이다. 타인에게 부인(아내)을 소개하는 것은 것은 '부인'의 존재를 밝힘으로써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지 그의 역할이나 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 타인 앞에서 겸손하려거든 자신만 겸손하면 된다. 굳이 '집사람', '안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부인까지 낮춰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겸손하고자 어머니를 낮춰 부르는가? 부인은 어머니만큼 소중하지 않은가?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다. 부인(아내)과 몇 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지 아는가? 소중하지 않은 사람과 반 백 년 이상을 함께 할 수는 없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뚫어야 할 경쟁률은 2억 분의 1이다. 남자가 한 번 사정 시 쏟아내는 정자는 약 2억 개라는 뜻이다. 반면 난자는 200만 개의 미성숙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중에서 약 12개 가 넘는 난자들이 동시에 다음 달 배란 후보에 오른다고 한다. 이 말은 2억 분의 1을 경쟁을 뚫고 온 정자를 만나기 위해 약 12개 가 넘는 난자가 경쟁을 벌인다는 뜻이다. 경쟁률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2억 분의 1의 경쟁률을 뚫은 정자가 제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자궁의 도움 없이는 나팔관까지 갈 수 없고, 마지막으로 난자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서는 난자와 만나기 힘들다. 이렇듯 여성(난자)은 특별하다. 최소한 남자 이상이다. 이 말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위대하다.'거나 '특별하다.'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이 시대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라거나 성차별을 받을 만큼 약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독서평 <단어가 인격이다 - 배상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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