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국내도서
저자 : 심강현
출판 : 을유문화사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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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야간, 특근으로 힘들법한데, 지친 몸을 이끌고 일요일인 오늘도 회사에 나와 일을 하고 있을 직장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두서없는 글"을 오늘도 시작해 봅니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을 읽으면서...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지은이 심강현, (주)을유문화사) 시작글중에서...

나뭇가지 위에서 바스락 거리는 새들의 종종거리는 발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꼭 울창한 숲이 아니더라도, 이른 아침이면 아파트 정원의 작은 나무 아래서 귀여운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녀석들은 해가 뜨자마자 벌레를 잡기 위해 아침 사냥에 나섭니다. 그날의 사냥 성적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둥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귀여운 새끼들을 위해, 혹은 알을 품은 사랑하는 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먹이를 구하는 작지만 당찬 모습.


녀석들은 아파트 옥상을 훌쩍 뛰어넘어 높은 하늘 위로 한순간 솟구쳐 오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몸을 비틀어 급강하하며 지면 위로 미끄러지듯 아찔한 곡예비행을 선보입니다. 아침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미 시작된 그런 멋진 비행을 통해, 각각의 높이에서 모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고귀한 시선의 자유가 그들에게 허락됩니다. 가장 높은 곳의 고결한 공기를 마시며 가장 낮은 곳의 번잡한 생명의 세계를 천진한 눈으로 굽어봅니다. 그들에게 창공은 자부심이며 지상은 먹잇감이 살아 쉼 쉬는 삶의 터전입니다.

자유로운 새들은 스스로 먹이를 사냥합니다. 먹잇감이 부족한 날이면 잡아온 먹이를 남김없이 토해 내 모두 새끼들을 먹이고, 자신은 굶을망정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비천한 아양과 구걸만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 운명을 향해 자신의 전부를 던집니다. 그래서 비둘기와는 달리 먹이가 없는 날에도 그들은 그토록 당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침 나뭇가지의 새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새들이 참 좋습니다. 자신의 하루에 의연히 주인이 되는 그들의 당당함과 자유로움 말입니다.


광장에서 누군가 흘린 빵 부스러기를 우연히 발견한 비둘기의 초라한 기쁨은 이들 자유로운 새에겐 모욕입니다. 빵 부스러기의 기억에 다시 광장을 찾는 비둘기의 회귀 본능을 이들은 경멸합니다. 누군가 먹이를 던져 주면 한없이 기뻐하고, 그런 사람이 없는 날은 깊은 슬픔에 빠져 버리는 비둘기들은 그들에게 같은 종족이 아닙니다.



비둘기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생존을 위해 비둘기가 광장을 찾는 것처럼, 우리도 일터를 향합니다. 일터는 벽돌과 패널로 지어진 건물이 많습니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충성심을 보이려는 몸부림,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 패를 나눠 우월한 위치에 점하려는 몸부림 등. 아침새가 보면 웃기지도 않을 풍경이 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장 비둘기는 오늘 어떤 먹잇감을 던져줄까? 그 먹잇감을 맛있을까? 클까 작을까. 먹고 탈 나는 것은 아닐까? 미쳐 다 먹지 못한 먹잇감을 마저 먹을 수 있을까? 온갖 상상을 하며 일터로 향해 보지만,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비슷한 맛과 크기의 먹잇감입니다. 이렇게 지루한 현실이 반복되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작고, 맛없는 먹이를 열심히 주워 먹다 보면 어느새 크고 달짝지근한 먹잇감을 맛볼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먹이가 커도 너무 큽니다. 주둥이보다도 훨씬 큰 먹이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해보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도구나 기막힌 아이디어로 먹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드는 지혜가 없습니다. 먹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없습니다. 먹고살기에 바빠, 더 정확히 말하면 먹고 놀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먹이의 크기는 일감의 크기입니다. 큰 먹이를 먹으려면 큰 입과 목구멍,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생존만을 위해 작고 맛없는 먹이만을 주어먹던 습관이 큰 먹잇감을 '그림의 떡'으로 만들 뿐입니다. 일감도 그러합니다. 지금은 작고 초라한 일감이 주어지지만, 언젠가 큰 일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큰 일감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작고 맛없는 음식을 부지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어치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땅만 쳐다보며 눈앞에 먹이에만 집중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동료 비둘기들이 먹는 모습도 지켜봐야 합니다. 어린 비둘기에게는 효과적으로 먹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고, 과한 먹잇감 앞에서 당황하는 동료 비둘기를 도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언젠가 때가 되면 노력한 대가가 따라온다는 것이며, 그 대가를 받을 준비가 미리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을 읽으면서...


일터에서 노동력을 지불한 대가는 맛있는 음식이 되어 돌아옵니다. 맛없는 먹이를 먹은 대가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시 말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맛없는 먹이를 먹는 수고가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고를 덜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애당초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다면 굳이 맛없는 먹이를 꾸역 구역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요? 또, 맛이 있든 없든, 음식은 음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언가에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더 끌려다니면 다닐 수록 우리를 구속하는 그 무언가의 힘은 더욱 강해집니다. 이렇게 그것은 우리의 의존을 먹고 삽니다. 따라서 더 강력해진 그 무언가의 앞에서 우리는 오늘 하루도 싫든 좋든 힘겨운 감정의 마스크를 뒤집어셔야만 합니다. 


맛있는 음식만을 쫓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에 의존하게 됩니다. 점점 더 많은 양을 갈구하고, 분에 넘치는 욕심이 생긴 결과 혐오스러운 비곗덩어리가 온몸을 뒤덮은 것도 모른 채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만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쫓으면서도 비곗덩어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우선 '맛'은 주관적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맛과 내가 먹고 느끼는 맛은 다릅니다. 누군가에게 맛없는 음식이 내겐 맛있는 음식일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나만의 고유함과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만의 고유함으로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기 시작하면 혐오스러운 비곗덩어리를 멋진 근육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계속 언급되고 있는 '맛있는 음식'은 크고 멋진 집, 성능 좋은 자동차, 멋있는 외투,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 등을 뜻합니다. 이런 것들이 진짜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맛있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 즉 마음을 들여다본 결과 의미 있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의미있는 무엇이란 각자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는 '끈'이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는 물질뿐만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내뿜는 의식(마음)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 의식의 결과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며 창조의 시작입니다.





맛있는 음식에 부여하는 가치가 크면 클수록 일터의 먹이는 더욱 초라해집니다. 반대로 맛있는 음식의 가치가 작아질수록 일터의 먹이는 의미를 띠기 시작하면서 가치가 상승하게 됩니다. 한쪽이 부각되면 다른 한쪽이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각각을 독립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균형을 맞춤으로써 의미 있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워라벨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명분하에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V를 보거나 공부나 학습의 목적이 아닌 인터넷 사용과 유튜브 시청, 의미 없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술잔치는 워라벨에서 생활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빠진 자리에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의미 있는 만남, 여행과 같이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취미생활등이 자리할 때 비로소 워라벨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은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생활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이 중요한 만큼 나머지 일상도 중요한 법입니다. 즉, 일과 생활 모두 중요합니다. 이 둘이 합쳐져야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은 일과 생활에 저마다 중요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잔잔한 영향력으로 타인의 마음속에 울림을 전달할 수 있다면 현명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 감정의 주인이 되십시오. 비록 힘겨울지라도 제가 당신께 보여 드릴 하나의 길은 이니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을 겁니다 .왜냐면 모두가 가야 할 하나의 길이란 없으니까요. 이제부터라도 그 길을 함게 찾아보면 어떨까요. 누군가 미리 정해 둔 정답이 아닌 당신이 찾아낼 당신만의 삶의 해답 말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 감정의 주인, 더 나아가 당신 삶의 주인이 되는 길 말입니다.


전염력이 극히 강한 타인의 욕망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며, 끝내 그 아래 간직된 당신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다면, 삶 앞에 가장 당당한 모습으로 설 수 있습니다. 타인의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욕망에 따른 삶을 사는 사람만이 인생에 주인입니다. 인생의 주인으로 사시는 모든 분들께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당신만의 욕망을 욕망하십시오. 당신에겐 충분한 역량이 있습니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을 읽으면서...

댓글 보기

  1. 배수진 2019.12.22 21:18

    좋은 정보가 많네요 구독할게요
    이번에 티스토리 오픈했는데 가끔 방문 구독 부탁해요~~~
    일상을 간단하고 재밌는 그림(움짤)괴 같이 적으려고 합니다

    https://besoojincarpedeum.tistory.com/m

    • enne. 2019.12.22 21:31 신고

      방문과 구독 감사합니다. 재밌는 짤 보고 왔습니다. 물론, 구독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