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자유는 멀리 있지 않아! <당신은 항상 자유롭습니다.>


요즘 김찌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키워드는 '작가, 독서, 글쓰기, 책, 자유, 일, 미래'입니다. 이 중에서도 '자유'에 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데요. "나는 자유로운가? 부터 시작해서 "내가 자유롭다고 생각할때가 언제인가?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때가 언제인가?"등 자유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유'를 주제로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에 관한 평소 생각과 지금 당장의 느낌, 참고할만한 책속 이야기등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처럼 통 속에서 지내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디오게네스에게는 왕궁에 들어가서 호의호식하는 아리스토포스라는 철학자 친구가 있었다. 아이스토포스가 지나가다 그걸 보았는데 마침 그가 콩깍지를 먹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그 모양을 보고는 아이스토포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왕한테 와서 고개를 숙일 줄 알면 콩깍지를 먹지 않아도 될 텐데..."

그 소리를 듣고는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콩깍지를 먹을 줄 알면 왕 앞에서 굽실거리며 살지 않아도 될 텐데..."

위 이야기는 개처럼 산다고 해서 견유 철학자로 불리는 디오게네스의 일화입니다. 

디오게네스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였고 아리스토포스에게 중요한 것은 밥이었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밥을 얻는 활동은 자유를 제약합니다.  회사를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출근해서 일은 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면 해고당하기 쉽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고, 더 많은 성과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상사에게 아양도 떨어야 하고 고객에게 양심도 팔아야 합니다. 이것이 루소가 말한 '멍에'이고 '편안한 굴종'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자유를 얻고 싶지만 멍에를 벗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오히려 등에 진 짐만 늘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편안한 굴종'을 선택하고는 그러려니 하며 살게 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은 환상 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현실을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밥벌이를 할 방법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회사에 취업을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하거나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직을 얻는 방법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를 말하면 사치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자유라는 관념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방법에만 집착하느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길에는 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온 '늑대와 개'으 대화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밤 굶주린 늑대가 살이 찐 개와 마주쳤다.

늑대는 매일 끼니 걱정을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개에게 편안하게 잘 먹고 살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쉬운 일이야. 내가 하는 것처럼 하면 돼."

개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늑대가 방법을 자세하게 물었다.

"아주 간단한데, 주인집을 지켜주면서 도둑을 잡아주는 거야."

배고픈 야생 상활에 지친 늑대는 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개의 목덜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목에 난 그 상처는 뭔가?"

"이건 쇠사슬 때문이야. 지금을 풀어져 잇지만 평소엔 쇠사슬에 묶여 있어야 하거든. 하지만 주인이 내게 먹을 것을 남겨주고 날 귀여워해주니까 괜찮아."

이야기를 들은 늑대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난 안되겠어. 맛있는 음식은 자네 혼자 먹게나.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쇠사슬에 묶여 있기보다 거친 음식을 먹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쪽을 택하겠어."


개와 늑대의 문제는 자유냐 밥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솝은 개가 자유를 잃었고 늑대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를 이분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자유롭다는 말 속에는 원하는 음식을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잇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밥의 자유도 자유의 일부분이고, 이동의 자유나 이르이 자유보다 원초적입니다. 인간인 이상 먹고사는 문제가 일차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밥의 자유가 생각의 자유나 좋아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 지키는 개는 늑대의 거절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밥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안전한 밥을 포기하는 대신 거친 밥을 먹더라도 생각과 자유를 추구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주인이 제공하는 밥을 얻어 먹는 처지에서도 자유의 영역을 넓히는 방법을 강구해볼 수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개와 아리스토포스와 흡사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자유를 얻습니다. 여기서 자유란 의식주를 해결하고 가족을 돌보는데 필요한 수단의 자유, 취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방법의 자유등을 뜻합니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을 하는데, 일 하는 행위 자체에서 자유를 제약받는다고 생각하니 이 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싶습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일은 인생이다." 또, 누구도 말합니다. "사람들은 금전적 제약에서 자유로울 때 마침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후에는 자신의 돈을 진짜 중요한 곳에 가장 정당하게 소비할 수 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모래성을 만들고, 또 파도에 의해 부서지는 모래성을 보고 까르르 웃는 어린아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이 아이는 왜 자신이 애써 만든 모래성이 속절없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할까요? 그것은 이 아이가 파도가 휘몰고 간 자리에 다시 새로운 모래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아이의 모래성 쌓기 놀이는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 즉 진정한 자유에서 나온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고, 칭찬하지도 특별한 대가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이 아이에게 모래성을 만드는 행위는 즐거운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노동'이 아닌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는 중요합니다. 태생이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자유를 얻고, 일부 제약이 따르지만 비교적 자류롭게 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생을 마감할 때도 '자살'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집니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을 선택할 수 없지만, 일단 태어난 이상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면서 각자의 삶을 영위합니다. 우리에게 자유롭지 못한 상황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블로그를 하는 것은 저의 자유입니다. 일어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일어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 아침을 먹을 것인지, 출근을 몇 시에 할 것인지 등 모든것이 자유롭습니다.  


자유는 멀리 있지 않아! <당신은 항상 자유롭습니다.>


어린아이가 모래성 쌓기 놀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처럼, 어른도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직장생활은 자유를 제약한다'는 요지의 글을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출근하면서부터 퇴근을 생각한다는 현대인의 마음속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퇴근 후 아무런 제약없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지금까지 생각했던것처럼 직장생활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를 섬세하게 살펴보세요. "내가 이렇게 자유로웠나!"하고 깜짝놀랄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10조부터 37조까지의 조항에서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등 여러 가지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제12조 신체의 자유,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 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제16조 주거의 자유,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제19조 양심의 자유, 제20조 종교의 자유, 제21조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제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있고, 제37조 1항에는 '헌법에 기본권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헌법에 열거되어 있는 자유만이 헌법상의 자유로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조문에 적힌 것 말고도 중요한 기본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입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입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주체는 국가권력입니다. 자유를 제한당하는 시민들이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국가권력은 헌법에 따라 자유를 적법하게 제한할 수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누구나 자유가 제한되는 경험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회사는 직원에게 몇 시까지 출근하라는 지시, 식사는 몇 시부터 시작하라는 지시, 그동안 일하던 지역과 부서에서 일하지 말고 전혀 다른 지역과 부서에서 일하라는 지시, 근무하는 동안에 어떤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지시를 합니다. 모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지시입니다. 하지만 이 제한에는 회사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계약, 즉 노동자의 동의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직원이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하면 회사는 더 이상 직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지시를 할 수 없게 되고, 직원도 그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업습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자유를 제한합니다.(제한당하는것이 아닙니다.) 일부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사회에 참여하고, 보다 큰 이익을 얻기도 합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5조는 직업선택의 자유입니다. 조문에 나와 있지 않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는 '회사선택의 자유'도 포함합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 곳입니다. 100% 자발적이며, 100%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 일부의 자유를 제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자유며, 어느 정도 제한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느끼지 못할 뿐 우리 모두는 대단히 자유롭습니다. 본인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유를 찾아 나서면 됩니다. 자유는 헌법이 보장해 주는 기본 권리이기전에 자유스러움을 느낄때 찾아오는 평화로움입니다. 자유는 느낌입니다. 


자유는 멀리 있지 않아! <당신은 항상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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