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저 "출판하는 마음" 서문을 읽고, 급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책 속 이 문장

"내가 매일 만지는 건 책,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사적 소유물 중 가장 큰 부피와 무게를 차지하는 물품도 책이다. 일상의 지배자, 인생의 중심축인 책이지만 그 책의 생장 과정에는 무지하다. 저자일 땐 원고를 출판사에 넘김으로써 1,2단계에 개입했다가 빠지고, 독자일 때는 마지막 10단계에서 구매함으로써 참여한다. 중간을 모름이다. 

결재 한 번으로 손에 쥐는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땀방울이 몇 백만 개쯤 들어갔는지, 원고를 써서 한글 파일로 넘기면 몇 사람의 손길 거쳐 몇 리 길 돌아 독자에게 당도하는지 소상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자본주의 시회의 세포 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농사짓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쌀을 얻어 밥을 먹고, 옷 만드는 사람의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 옷을 사서 입는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편리를 누릴수록 능력은 잃어간다. 물건을 귀히 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

분업은 사회의 생산물들, 사회의 힘, 사회의 향유를 증가시키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사람들 각각의 능력을 빼앗고 감퇴시킨다"라고 일찍이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가 분석했듯이, 거대한 시스템에 하나의 부속으로 끼워져 파편화된 노동을 수행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 할수록 '총체적' 삶에는 무능해지고 만다."

"사적 소유물 중 가장 큰 부피와 무게를 차지하는 물품도 책이다"

이 문장을 읽고, 매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경제의 원리라고 하나? 물건을 돈주고 구입하면, 물건을 받고 돈을 내주면 소유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 이런 경우 '가졌다. 소유했다' 고 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소유한 물건이 탄생한 과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 굳이 탄생과정까지 알 필요가 있나. 그 전에 진정으로 소유한 것이 맞나? 죽을때 가지고 가나? 화장할때 물건도 같이 화장해서 유골함에 같이 안치시키는가? 그렇지 않다면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은 옳은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예로 제시한 책을 온전히 자기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강력한 독서 도구를 이용한다고 해도, 책의 저자와 같은 정신은 아닐 것이다. 혼을 닮은 책을 온힘을 다해 읽는다고,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혼을 다해 읽는다고 해서 저자와 같은 혼이 되겠는가?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수백권을 읽어 통합하고 인용하며 통찰한다고 하는데, 이런 저자의 혼을 어찌 감당할 것이며 따라할 수 있겠는가.

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을 통해 저자의 혼과 의도를 같은 높이에서 사유하려는 의지일뿐 애당초 책을 소유한다는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의도는 소유와는 무관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자연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보다 깊은 통찰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 글은 저자와 비슷한 높이에서 사유해 보고 싶은 의지의 표현의 글이자 '독서를 한다는 것' 에 대한 통합적 통찰을 하고 싶었던 욕망의 표출이었으리라.

뭔 말이야? 그래서 뭐 어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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